[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앞의 글에서 민주주의가 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봤다면 이번 글에서는 제목처럼 경제, 통일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겠습니다.
워낙 비슷한 단어가 많아 헷갈리는 파트 TOP1 이지만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마지막에는 저번 글처럼 긴 도표를 제공해 드릴 테니 글은 편하게 이해의 용도로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1. 이승만 정부
이승만 정부의 경제 정책은 농지개혁과 원조경제입니다.
기본적으로 남한은 사회주의의 북한처럼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이 아니라 유상매입 유상분배입니다.
정부는 토지 개혁을 위해 우선 땅을 사야겠죠?
토지 개혁의 목적은 사유지 제한입니다. 3정보를 기준으로 넘어가는 토지를 모두 매입합니다.
1정보는 약 3000평으로 학교 운동장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땅을 최대 3정보로 제한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우리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정부는 땅을 살 돈이 없었어요. 돈을 나중에 주겠다며 지가증권을 발행합니다.

문제는 농지개혁이 시행된 게 6.25 전쟁 이전입니다.
지가증권으로 땅을 사고 나니까 전쟁이 터지는 겁니다. 시민들은 헐레벌떡 부산으로 피신했죠.
땅을 팔아 지가증권을 받은 시민들은 먹고살아야 할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지가증권들을 싸게 매각하기 시작합니다.
그 가격이 무려 90% 폭락하는 상황이 펼쳐지죠.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지가증권.
정부는 지가증권의 대우가 이러면 안 되겠다 판단하여 조건을 달아줍니다.
귀속재산의 거래에 한하여 현재의 시세가 아닌, 기존 지가증권의 가치를 100% 인정해 주겠다.
쉽게 말하자면, 일제가 남기고 간 공장들을 지가증권으로 구매한다면 싸게 산 지가증권이어도 기존의 가격으로 인정한다는 거죠.
이렇게 유상몰수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주고, 유상분배에 의해 땅값은 해당 토지 1년 생산량의 150%로 책정했습니다.
그리곤 5년간 분할 상환하도록 했죠. 농지개혁의 유상분배, 유상몰수 알아봤습니다.
이 농지개혁에 의해 사유지 제한은 물론 식민지 지주제가 청산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들을 소작농으로서 착취하는 형태였죠.
그런데 아까 유상몰수할 때 발행한 지가증권 있잖아요? 이 지가증권의 가치가 폭락할 때 판매한 사람은 망하고, 산 사람은 흥합니다.
싼 값에 지가증권을 쓸어 담고 일제가 남기고 간 공장들을 거의 10%의 가격에 사들이죠. 그게 지금의 대기업들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두산, SK, 한화 등 유명기업들이 이때 탄생했죠
원조경제는 뭘까요? 말 그대로 지원을 받는 겁니다. 휴전과 함께 미군은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었죠.
미국의 남는 잉여 농산물들을 제공을 받습니다. 가장 큰 규모의 지원이 이루어진 건 면화, 설탕, 밀가루였습니다.
이 3가지만 많이 받다 보니 해당 산업들이 발전하죠. 하얘서 삼백산업이라 합니다. 지금의 삼성전자가 삼백 산업을 통해 성장했었죠.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과 원조경제 였습니다.
2. 박정희 정부
A : 엇, 왜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를 몰아내고 등장한 장면정부는 넘어가죠?
장면 정부는 들어선 지 얼마 안 가 5.16 군사 정변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경제와 관련된 기록이 없습니다.
박정희 정부 하면 뭐니 뭐니 해도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입니다. 3, 4차도 있지만 1, 2차가 메인이죠.
물론 이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은 앞의 장면 정부에서 이미 설계를 해놓은 것이고, 박정희는 이 설계를 활용한 것이죠.
박정희 정부는 정치를 60 70년대로 나눠 살펴본 거처럼, 경제도 마찬가지로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1차,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962-1971년인데, 이때도 저희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경공업을 주력공업으로 시작합니다. 신발이라든지, 옷이라든지 큰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 업종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죠.
그러나 경공업이라도 돈이 필요한건 매한가지 였습니다. 이때 문제가 발생하죠.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잘못된 한일 수교로 가져온겁니다. 이외에도 베트남 파병도 했고 (브라운 각서)
심지어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담보로 독일에 파견을 보냅니다. 광부, 간호사 등등..


이런 방법을 통해서 우여곡절 끝에 1, 2차 5개년 계획이 성공하고 70년대로 넘어갑니다.
70년대엔 이슈가 많아요.
경부고속국도를 개통하고,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모두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경제 성장 속에서 조금이라도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외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1970년 전태일 분신 사건.
전태일이 일하고 있는 청계천에선 중학생 밖에 안 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미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3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 열명이 넘게 들어가선 일을 하고 있었죠. 밀폐된 공간이라 결국엔 폐병에 걸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을 막기 위해 전태일이 나선겁니다.
사실 이때 열악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법으로도 근로기준법이 명시되어있었거든요.
법대로만 하면 나아지는데 경제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정부는 눈을 감은겁니다.
전태일이 요구한 건 1달에 딱 2번만 쉬게 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전엔 그조차도 못 쉬었다는 소리에요.
매일같이 일하고, 15-16시간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권한도 보장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결국 이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하며 분신했습니다.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의미가 있죠.
지금은 주말 수당에 주 52시간 노동에 뭐 많잖아요. 모두 이런 분들의 희생 덕분에 그나마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3,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972-81년에 진행되었습니다.
자본이 없어서 경공업으로 시작했던 1, 2차 때와 달리 자본이 어느 정도 축적되면서 자본을 투여하는 중화학 공업에 집중합니다.
1977년에는 드디어 수출 100억 불을 달성하기도 했죠. 73년과 78년에 오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에도 버텨냅니다.

석유 가격이 올라 전세계적으로 위기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위기 극복의 민족임을 증명했습니다.
오히려 중동으로 날아가서 거기서 건물을 지으며 소위 ‘오일머니’를 벌어옵니다. 위기의 근원지에서 돈을 벌어오는 모습.
60년대의 경공업, 70년대의 중화학 공업. 경부 고속국도, 수출 100억불 등 박정희 정부였습니다.
3. 전두환 정부 ~
이제 80년대로 들어갑니다. 경제 분량은 이미 거의 다해서 남은 정부들을 모아 한 번에 진행하겠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3저 호황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1986년, 1988년에 걸친 3저 호황은 말 그대로 3개가 낮다는 소립니다. 저금리, 저달러(환율), 저유가.
-저금리로 인해 돈을 빌리기 쉬워지고
-저달러로 인해 외국에서 달려도 잘 빌려오고
-저유가로 인해 기름값이 싸지니 공업이 발달합니다.
이렇게 한국이 잘나가기 시작하자 선진국들은 더 이상 우리를 봐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 가난할 때는 잘 돌봐줬거든요. 그러면서 강요한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개방하는 거예요. 1876년, 100년 전에 우리가 강화도 조약으로 첫 개항을 했잖아요?
1980년대에 와서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빗장을 여는 두 번째 시기입니다.
이제까지 개발도상국으로 혜택을 보고 있던 우리나라로선 좋지 않은 안건이었죠. 그래서 수락하지 않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1986년, 최저임금법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패스할게요. 계속해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는 것외엔 별게 없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대한 압력은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집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했습니다.
여러분의 통장은 모두 각자의 이름으로 만들어져있죠?
예전에는 '우리 가족'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검은 돈이 운영되기 쉬웠죠. 이를 막기 위해 실시한겁니다.
이 금융실명제를 시행할때 김영삼은 긴급명령을 하기도 합니다.
긴급 명령을 통해 기자회견을 여는데, 전쟁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금융 실명을 하겠다는 발표가 끝이었죠.

그리고 당시 선진국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OECD에 가입합니다. 계속 끌어왔던 우루과이 협상이 이때 타결되기도 하죠.
자연스럽게 선진국 반열에 오르나 싶었더니, 어이쿠! IMF가 터집니다.
IMF란 간단히, 달러가 부족한 겁니다. 정말 순식간에 거지 나라가 됩니다. 이게 자본주의의 취약점이죠.
기축통화인 달러외엔 모두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립니다. 이 IMF는 정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일단 정권이 야당으로 교체됩니다. (처음으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바뀐 정권이기도 합니다)
정권 교체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 앉자마자 IMF라는 폭탄이 코앞에 있습니다.
IMF 사태 극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단어로 표현한다면 경쟁과 효율, 그리고 적자생존입니다.
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과정 속에서 기업 합병, 정리해고, 비정규식의 양산 등 앞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그리고 금모으기 운동을 진행합니다. 나라가 망하면 우리나라 돈은 아무런 화폐가치가 없는 휴지에 불과합니다.
그땐 뭘 가지고 있어야 하죠? 바로 금입니다. 그걸 가지고 귀축통화라고 할 수 있는 달러를 살 수 있거든요.
전 세계가 인정해 주는 금이라는 화폐. 즉 나라가 망하면 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엥? 금 모으기 운동을 한 뒤에 금을 내놓습니다.
금모으기 운동 이전의 국가 금 보유량은 10여 톤 정도였는데 무려 그 20배가 넘는 금이 모이게 됩니다.
제2의 국채보상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 세계가 깜짝 놀랐죠.

그리고 금 모으기 운동뿐만 아니라 다들 희생하자 라며 노사정 위원회를 조정하여 정리해고를 하는 모습.
이런 노력들 속에서 IMF를 조기에 졸업하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가기 단 8일전에 FTA를 체결합니다.
자유무역협정이라고, 관세를 없애는 조약입니다. 최초의 FTA는 칠레와 맺었죠.
이후 노무현 정부에 가서는 미국과도 한미 FTA를 맺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현대의 경제사를 쭉 살펴봤는데요, 한강의 기적이 정말 그냥 이뤄진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4. 통일 정책
드디어 끝의 끝입니다. 이 통일 정책만 지나면 한국사는 끝이에요. 약 40편 분량의 글을 써왔네요.
한국사 첫 글에서 얘기한 '그 시대의 과제'가 기억나시나요?
개항기에는 신분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가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가
현대에는 가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 있듯, 지금 저희에게도 과제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틀림없이 통일이죠.
통일은 단순히 진영논리에서 설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얘기하면 빨갱이야! 이런 모습은 잘못된 거죠.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통일을 추구하는 모습은 진영을 떠나서, 좌우를 떠나서, 보수진보를 떠나서 모두가 실천하려고 했었습니다.
물론 최초의 정부, 이승만 정부는 북진통일을 주장했으니 제외하고 설명하겠습니다.
통일의 문을 열었던 정부는 박정희 정부예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보수정부죠.
박정희 정부가 정했던 통일 3대 원칙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첫 걸음은 7.4 남북공동성명 입니다.
이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냉전의 완화, 닉슨 독트린이죠.
이를 기점으로 서서히 남북간의 교류가 시작됩니다. 처음으로 남과 북이 만나는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립니다.
남북 적십자 회담은 7.4 남북 공동 성명보다도 1년 앞인 1971년입니다.
이때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김일성과 평양에서 만납니다.

이후락은 긴장해서 독약이 든 앰플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혹시라도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되면 죽으려했죠.
그정도로 남과 북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남북이 만나는 적십자 회담은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결정된게 통일 3대 원칙입니다. 자주, 평화, 민족단결.
이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각국에서 발표된 후 같은 해에 남북조절위원회가 등장합니다.
조절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 무조건 7.4 남북 공동성명, 박정희 정부와 연결시키면 됩니다.
근데 사실은 7.4 남북 공동성명이 지속성을 갖진 못합니다. 왜냐하면 각국의 체제 강화에 이용되는데 그치거든요.
남측에서는 유신헌법. 북측에서는 사회주의 헌법 제정에 공동성명이라는 상황을 이용하죠.
기억나시죠? 박정희가 통일 기후를 배경삼아 7차 개헌 (유신 헌법) 을 진행했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오히려 분단된 각국의 체제를 강화시키는데 활용되는 한계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소위 보수정부라고 하는 박정희 정부에서 통일의 물꼬를 열었다는 건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지긴 합니다.
장면 정부는 역시나 너무나 짧아서 넘어가고, 전두환 정부로 가봅시다.
전두환 정부는 남북 간의 합의를 주도하진 않았습니다.
근데 이때 남한에 홍수가 나서 한강이 넘칩니다. 그때 합의라기 보단, 북한의 일방적 지원을 받았죠.
'우리 같은 민족 아닙니까? 쌀을 드리겠습니다' 이러면서 수혜물자를 지원해줍니다.
딱히 남한이 통일 정책을 시행한 것도 아닌데, 북한의 수혜물자 지원을 계기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6월민주항쟁으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를 주도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북한과도 외교가 잦아집니다.

남북이 동시에 UN을 가입하고 그러면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려요. 이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 기본 합의서가 나옵니다.
남북 기본 합의서는 앞에 나왔던 7.4 남북공동성명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습입니다.
우선 남북관계를 규정짓습니다. 일반적인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로 설정하죠.
그다음 남북 간의 교류는 민족 내부의 교류로 취급하기로 했습니다. 한 발짝 진전하는 모습.
노태우 정부도 사실 소위 얘기하는 보수 정부이지만, 이렇게 통일에 대한 토대를 쌓으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도 노태우 정부때 이뤄졌습니다.
(남북 유엔 동시 가입 - 남북기본합의서 -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김영삼 정부도 패스하겠습니다.
김영삼 정부때 김일성이 죽어버리거든요. 북한은 대통령이 죽으면 몇 년동안 상을 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과 함께 남북 관계를 많이 개선시킵니다.
대표적인 정책이 김대중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 햇볕정책이죠
당시 정주영 (현대 명예 회장) 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기도 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고향이 이북이거든요.
그는 내려올 당시, 소 한마리를 끌고 내려왔었습니다.
'소 한 마리 갖고 장사해서 지금의 현대를 만들 수 있었다, 지금 갚으러 간다' 라며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는 퍼포먼스를 보이죠.

이런 통일의 무드 속에서 금강산 해로관광도 일시적으로 가능해집니다.

결정적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정말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전까지의 회담과 달리 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이 이루어지죠. 남북 정삼 회담에서 통일방식의 차이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우리 남한은 통일에 있어서 늘 연합제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연방제를 지향하고요.
연합제는 유럽 연합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나라와 나라끼리 경제 공동체로 형성되어있잖아요 ? 딱 그 모습입니다.
연방제는 미국을 떠올려보세요.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 여러 주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지향성에 처음에는 통일의 방식이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6.15 남북공동선언때 합의점을 본겁니다.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찾고, 천천히 맞춰가자며 통일방안을 상정하죠.
이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옵니다.
개성공단이 열리고, 경의선이 개통되고,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이루어지고, 금강산 육로관광이 일시적으로 열립니다.

이 풋풋한 분위기는 계속 이여저서 노무현 정부때도 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집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것이 바로 10.4 남북 공동선언이죠.
이 기조가 계속 흘러갔다면 지금쯤 통일되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죠?
그 이후의 이야기는 한국사 정규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더 진행하진 않겠습니다.
한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면서도 너무 지엽적인 부분은 제외해가며 작성해보았습니다.
한능검이 목표이신 분들에게는 시험 합격을 기원드리고, 역사의 배움이 목표이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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