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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민주주의의 발전

[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여러분, 다들 투표하시죠?

 

투표하러 가서 받은 그 투표용지가 여러분들한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신 적 있을까요?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내가 원하는 사람을 뽑을수 없는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그들끼리, 기득권끼리 체육관에서 대통령, 국회의원을 다 뽑고 그랬던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원하는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가서 싸웠거든요.

 

투표용지를 잘 보시면 그들의 핏빛이 묻어있습니다. 그러니깐 투표를 하는 것은 노력하신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글을 보시고 오늘날의 투표가 그냥 이루어진게 아니구나. 느끼게 되실 겁니다.

 

제 앞 시대를 살았던 그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현대, 정치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0-1) 민주주의의 발전

 

 

먼저 우리 정치사를 공부할 때, 축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개헌사. 헌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따라가는 겁니다.근데 사실 헌법은 잘 바뀌는 게 아닙니다.

 

우리보다 훨씬 민주주의 역사가 긴 미국도 약간의 수정은 있었을지언정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죠.

 

반면 우리는 헌법이 9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스스로도 지금의 헌법이 이상한 걸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이 더 표를 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죠.

 

하지만 고치지 않습니다. 왜냐? 헌법이기 때문이죠. 한번 정해진 룰 안에서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 그게 민주주의거든요.

 

쉽게 룰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헌법을 9번이나 바꾼 이유는 대부분이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헌법이 대통령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했었죠? 독재를 위해 개헌을 거듭해 가는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이게 첫 번째 축이라면, 두 번째 축은 그 독재에 저항하는 저항사입니다.

 

민주화 항쟁. 이런 단어 들어보셨잖아요? 이렇게 개헌사, 저항사를 두 축으로 현대 민주주의를 설명드리겠습니다.

 

 

 

 

 

1. 이승만 정부

 

 

먼저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부부터 볼 건데요, 헌법은 항상 대통령을 어떻게 뽑는가, 이 대통령 선출 방식에 초점을 맞추시면 됩니다.

 

5.10 총선거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처음 제정한 헌법, 제헌헌법의 내용이 뭐였죠?

 

바로 대통령 간선제입니다. 그 간선제에 의해 이승만이 뽑혔죠. 제헌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친일파 처단, 농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물론 친일파 처단은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프락치 사건으로 해체시키는 바람에 실패하죠. 너무 아쉽습니다.

 

 

이때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차출될 수 있었던 건, 김구 등 임시정부 세력이 5.10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영향이 큽니다.

 

제헌국회의 임기는 2년이어서, 2년이 지나자 그때 5.10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들이 대거 참여합니다.

 

 

그리고 총선 이후, 뚜껑을 열었더니 이승만을 지지하는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낙선된 겁니다.

 

이제 2년이 더 흐르면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이승만은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없겠죠?

 

(제헌 헌법 : 대통령의 임기는 4년, 중임은 한 번 가능)

 

 

여기서 질문! 만약 이승만이 대통령 선거에 뽑히지 못하면 어떡하죠..?

 

그만 두면 되는 겁니다. 너무 당연하죠? 이게 민주주의고, 이게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이승만은 자기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꿉니다. 헌법을 바꾸는 건 결코 건강한 행위가 아니에요.

 

1차 개헌.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꿉니다. 직선제가 국민이 뽑는거죠?

 

 

이게 왜 이승만이 다시 뽑히는 것과 관계가 있느냐.  1차 개헌과 대통령 선거는 6.25 전쟁 중에 진행됐습니다.

 

6.25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이게 국민들한테 통해서 이승만은 재임에 성공하게 됩니다.

 

1차 개헌은 의원내각제, 대통령제 등 좋은 것들을 다 발췌해서 만든 헌법이라 발췌개헌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근데 그전에, 분명 교체된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이승만 지지세력이 아닌 야당일 텐데, 1차 개헌을 찬성하겠냐고요. 당연히 안 하죠

 

개헌을 하기 위해서 이승만은 포크레인을 부릅니다. 

 

엥?

 

야당 국회의원의 통근버스를 포크레인으로 달랑 들어서 겁을 주고 경찰서로 끌고 가서 협박하여 개헌안을 통과시키도록 하죠.

 

협박해서 개헌안을 통과시키도록 하죠. 개헌안 투표할 때도 거의 뭐 공개투표였습니다. 정치깡패들 나란히 세워두고 진행했죠.

 

이를 부산정치파동 사건이라 합니다.

 

당시 국회의원의 통근 차량

 

당시는 1952년, 전쟁상황이었기 때문이다.라는 변명이 있겠지만 이승만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한 건 사실입니다.

 

시기 상으로는 아직 6.25 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에 있습니다. 

 

 

 

어쨌든 대통령 뭐, 전쟁 중이니까 두 번 할 수 있죠. 4년 4년 해서 8년 했네요?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개헌하면서 까지 2번 했으면, 이제 어떡해야 하죠?

 

그만두면 됩니다! 두 번 하려고 개헌도 했고, 이제 다 했으니 약속을 지키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또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2차 개헌을 합니다.

 

 

이 2차 개헌은 사사오입 개헌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설명드릴게요.

 

우선 사사오입 개헌의 내용은 여전히 직선제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중임제한을 철퇴한다' 즉 이승만, 단 한 사람만은 계속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정말 민망합니다. 대통령이었던 자 누구나 라면 모를까, 오직 초대 대통령, 자신만을 콕 집어 얘기하는 개헌이죠.

 

이것도 국회가 통과시킬 리가 없죠?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 정족수 2/3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이 당시 국회의원이 203명이었습니다. 2/3 하면 135.333 그러니까 136명이 찬성해야 통과인 거죠. 이거는 초등학생도 아는 겁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우리 정치사를 보면 참 드라마틱해요. 딱 135표가 나와버립니다.

 

요즘 드라마도 이러면 욕먹습니다. 아무튼 2차 개헌은 부결돼요. 1표 차이가 아쉽다곤 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때 갑자기 모 대학 교수가 등장합니다. 사람은 소수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죠.

 

그러면서 주장한 게 사사오입, 4 이하는 버리고 5 이상은 올린다. 즉 반올림법칙이죠.

 

0.333을 톡 떼버리고 203명의 2/3은 135명이다라고 하는데.... 이게 교육계에 몸담은 교수가 할 말입니까?

 

그렇가지고 결국에 통과시켜요. 초대 대통령의 중임제한을 철폐시키는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되어 버립니다.

 

이승만 장기 집권의 길을 까는 데 성공한 거죠.

 

 

 

이러니깐 당연히 저항도 엄청나게 심합니다. 이승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막 올라오자 이승만은 이를 찍어 누르려합니다.

 

그 찍어 누르는 시스템이 뭐였냐면 1958년에 시행된 반공체제, 신국가 보안법입니다.

 

내 말 안 들어? 너 빨갱이지?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이걸 통해서 정치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잡아들이고, 진보당 사건을 일으킵니다.

 

진보당의 당수가 조봉암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대통령 후보에도 나왔던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아무리 초대 대통령의 중임을 철폐했지만, 결국엔 선거에서 안 뽑히면 무용지물이잖아요?

 

그래서 진보당의 통일정책이 북한과 유사하다며 조봉암을 빨갱이로 치부하고, 사형시키기까지 합니다.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진보당 조봉암

 

 

신국가 보안법에~ 진보당사건에~ 정말 답도 없는 이승만 정부의 모습. 언론에선 난리가 납니다.

 

이게 지금 뭐하는거냐며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죠. 대표적인 신문이 경향신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폐간됩니다.

 

이 모습들을 묶어서 반공체제라고 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1960년도 대선이 또 열립니다.

 

사사오입 개헌에 의해서 이승만은 여전히 선거에 등장하죠.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 장면 정부 

 

1960년 대선의 포인트는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의 나이가 너무 많았죠.

 

비록 지금은 독재자의 모습이지만 이분이 어떤 분입니까.

 

구한말 대한제국, 독립협회에서부터 활동하시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사까지 오셨던 분입니다. 연세가 80세가 넘어가죠.

 

그러니깐 대통령 임기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분이 돌아가시면 부통령이 승계하는데, 이 부통령이 더 큰 화두였습니다.

 

이승만이 다시 대통령이 되더라도, 혹여나 죽어버리릴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출세를 위해선 부통령의 자리를 차지해야했죠.

 

 

당시 이승만 정부를 이끌고 있던 여당은 자유당이었습니다.

 

이 자유당은 이승만 사망 이후에도 계속 정권을 잡으려고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인기가 너무 없었어요. 그럼 어떡하죠?

 

부통령 안 하면 됩니다. 이 간단한 답을 안 하고 역시나 또 민주주의 약속을 어기죠. 이게 그 유명한 1960 3.5 부정선거입니다.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한 마을에 유권자 수가 100명이라고 칩시다.

 

근데 그 마을의 투표함을 열었더니 이기붕 찬성표가 150표가 나온 겁니다. 미친 거죠?

 

유권자 100명이 중에서 찬성표가 90표만 나와도 명확한 부정선거인데 150표가 나와버리는 겁니다.

 

이럴 거면 선거를 왜 하냐면서 학생들이 일어납니다. 학교에서 반장 뽑을 때도 이따구론 안 한다면서요.

 

바로 1960 4.19 혁명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사망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르죠. 최루탄이 뇌에 박힌 상황.

 

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시신 (안구에 최루탄)

 

죽어서까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 김주열 학생의 사망은 모두 들고 일어나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로 이승만은 물러나라고 하면서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게 됩니다.

 

 

마침내 독재 정권을 바꿔낸 겁니다. 그래서 우린 혁명이란 단어를 붙이는 거죠.

 

어찌 보면 반만년 역사에서, 민이 중심이 되어서 집권세력을 끌어내렸던 역사적 사실은 아마 이게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례가 없었거든요. 이렇게 되면서 갑자기 이승만이 내려오니까 그 자리를 대체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과도기죠. 이 과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 허정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과도 내각이 구성이 됩니다.

 

 

허정 과도 내각으로 들어서고, 3차 개헌을 실시합니다. 

 

현재 대통령제는 독재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3차 개헌은 여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못 볼 유일한 시스템입니다.

 

바로 내각책임제,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바꾸었습니다.

 

물론 대통령 윤보선이 있긴 하지만 힘이 없었어요. 지금 일본이나 영국이 사용 중인 의원내각제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죠.

 

그리고 양원제를 구성했습니다. 원래는 일원제였어요. 국회의원 단 하나였잖아요? 양원제는 민의원, 참의원입니다.

 

 

지금 미국의 상원 하원 시스템과 똑같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형태가 들어온 것이죠.

 

이 내각 책임제에 의해서 출범한 정부가 있으니 그 정부가 정면 정부입니다.

 

 

기존 이승만 정부의 자유당을 제치고 정면 정부의 민주당이 집권하게 됩니다.

 

근데 장면 정부는 혁명에 의해서 들어섰잖아요? 그동안 이승만에 의해 억눌리던 세력들의 여러 요구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혁신계는 본격적인 통일을 하자며, 중립화 통일방안을 주장합니다.

 

 

 

통일하자는 건 진보세력이죠? 앞에 진보당 사건을 통해서 짓밟히다시피 한 혁신세력이 다시 등장하는 겁니다.

 

이때 학생들도 합세해서 통일을 이야기합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유명한 문구죠.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가 밝히지 못했던. 58년도 반공 시스템 속에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런 사건들

 

예를 들어 6.25 전쟁 과정 속의 양민학살 사건들을 진상규명 해달라. 이런 요구들이 되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구들이 워낙 많아서 장면 정부는 잘 대처하지 못합니다.

 

 

 

허정 과도 내각 때 3차 개헌을 했고 장면 정부는 4차 개헌을 시도합니다.

 

4차 개헌은 앞의 개헌들과 성격이 다릅니다. 바로 소급입법을 도입한 개헌인데, 이게 무슨 말이냐?

 

원래 법은 만들어지면 만들어진 그 시점 이후부터 효력이 작동하는 게 원칙이에요.

 

 

반대로 소급이라 함은, 만들어진 법의 그 앞의 상황을 소급시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지각한 사람들을 벌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각하면 천 원씩 내리고 한거죠.

 

근데 이제까지 지각했던 사람들에게도 모두 천원씩 내라는 겁니다. 되게 불합리하죠?

 

 

그러나 이 불합리한 소급입법을 제정한 이유는 있습니다.

 

바로 앞의 3.15 부정선거 사범들을 더욱더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였죠. 이해가 가는 4차 개헌입니다.

 

다시는 이런 행위들이 역사 속에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벌을 주기 위해서 개헌한 거죠.

 

 

 

어쨌든 이 장면 정부가 4.19 혁명으로 들어섰지만, 너무나 많은 요구들에 모두 적절한 대응을 하진 못했습니다.

 

장면 정부의 어수선한 모습을 보곤 이 상황을 위기라고 주장하고,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군인들이 등장합니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갑자기 정치도 하겠다는 겁니다.

 

이러면서 4.19 혁명으로 탄생했던 장면 정부는 이렇다 할 발자취도 남기지 못한채, 4차 개헌을 끝으로 무너집니다.

 

 

 

3. 박정희 정부

 

이 군인들을 정치군인이라고 합니다. 소장 박정희를 중심으로, 4.19혁명으로 탄생했던 장면 정부를 군사 정변을 통해서 교체시키죠.

 

바로 5.16 군사 정변입니다. 그 뒤로 무려 18년 동안 박정희의 독재가 지속되죠. 너무 길어서 두 시기로 나눠서 봐야 합니다.

 

60년대와 70년대로요.

 

 

박정희 정부는 5.16 군사 정변을 통해서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만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마음껏 권력을 주무르는 거죠. 그럼 그에 맞는 권력기구가 있겠죠?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정치합니다.

 

그리고 5차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를 다시 대통령제로 바꾸고, 직선제 복구와 함께 양원제도 다시 단원제로 돌려놓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단원제죠? 국회의원. 하나 있잖아요.

 

 

 

그런데 이 5차 개헌에 의해서 출범했던 박정희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뭐였냐면 경제발전이었어요. 워낙 가난했기 때문이죠. 

 

중요한 건 경제발전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그 돈을 우리나라엔 없으니, 외국으로부터 가져오려 했습니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 차관조차 해주지 않죠. 그래서 박정희 정부는 일본과 수교하기로 합니다.

 

한국은 45년 광복 이후, 일본과 단 한 차례의 수교도 하지 않았거든요? 박정희 정부에 와서야 일본과 연결된 겁니다.

 

이때 일본에 대해 식민지 통치 이력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들고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수교의 형태는 '돈만 받으면 상관없어, 사과? 그건 안 해도 각자 알아서 이해하자' 였거든요.

 

말도 안 된다며 1964년, 한일 수교를 반대하는 6.3 시위가 일어납니다. 6.3 시위의 카워드는 '민족적 민주주의의 장례식'입니다. 

 

비록 박정희 정부가 5.16 군사 정변을 통해서 정권을 잡았지만, 민주적인 움직임을 보여서 국민들의 반응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일 수교의 모습을 보니 아니었구나. 하면서 박정희 정부에 걸었던 기대감에 부정하며 나온 문구죠.

 

 

 

하지만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 수교는 이루어집니다.  이 한일수교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 한일수교가 이루어진 당시, 김종필과 오히라의 비밀각서가 큰 이슈가 됩니다.

 

각 나라의 실세였던 김종필과 오히라가 '한일 수교를 ~방식으로 한다'와 같은 내용을 공석에서 논하지 않고, 비밀로 주고받은 거죠.

 

비밀메모

 

 

끝이 아닙니다. 한일 수교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가 1도 없었다는 겁니다.

 

돈을 주는데, 일본의 식민지 지배 이력에 대한 어떤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주는 겁니다.

 

1945년에 너희 독립한 걸 축하해~ 이러면서요. 그런 내용들이 오고 가는 모습들이 학생들의 분노를 가지고 오게 되었던 것이죠.

 

 

 

돈이 급한 박정희 정부로서는 경제개발을 위해서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라며 이런 수교를 진행합니다.

 

이걸로도 돈이 부족해서, 이번에는 베트남에 파병을 합니다

 

당시 이 미국과 베트남이 엄청난 전쟁을 벌이고 있었거든요. 거기에 우리 군인들을 파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모습.

 

이게 1966 브라운 각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돈을 확보해서 어떻게든 경제 개발을 해야겠다는 박정희 정부의 모습이었습니다.

 

 

경제개발이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찔합니다 정말.

 

하지만 하이리스크를 짊어지고 하이리턴에 성공합니다. 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경제개발이 꼽히죠.

 

이 경제와 관련된 모습은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경제개발 과정 속에서 박정희는 이미 대통령을 2번 했습니다.

 

 

2번이나 대통령 하고, 경제개발도 성공했으면 이제 박수받으면서 내려올 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나 아니면 안 돼’ 병이 도져서, 민주주의의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승만 정부가 이미 밥먹듯이 법을 뒤집으니, 나라고 못할게 어딨어 마인드로 진행하는 거죠.

 

이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때가 1968년인데, 마침 갑자기 불미스러운 일이 마구 벌어집니다.

 

 

첫째로 청와대 간첩 습격 사건, 휴전선을 뚫고 무장간첩들이 청와대 뒷산까지 내려온 겁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푸에블로호 사건. 미국 정찰배가 북한에 납치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미국과 북한의 전면전이 곧 벌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죠.

 

청와대 간첩 들어오지, 미북 전쟁 터질 것 같지, 이런 상황 속에서 클라이맥스가 터집니다.

 

68년도 막판에 가면 경북울진에 무장공비가 침투하는 사건까지 벌어지죠. 이 무장공비가 한두 명이 아니었어요.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68년도에 쏟아지듯 벌어지니 박정희가 틈을 타서 얘기합니다.

 

'위기상황이다. 경제성장 해놓았는데 북한과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있다. 내가 정리하겠다'

 

즉 명분이 생긴 거죠. 하지만 헌법에는 대통령은 두 번까지 라고 적혀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 개헌합니다. 이번 6차 개헌은 다른 말로 3선 개헌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대통령을 3번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개헌입니다.

 

이 3선 개헌안이 통과되어 또 대통령을 하는데, 3번 했으면 이제 어떡해야 해요?

 

그만둬야죠! 아까부터 제가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하죠? 그럴 때마다 당연한 답이 있고요.

 

 

 

하지만 우리 역사에선 그 당연한 대답이 아니라,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는 거죠.

 

이제는 아예 대통령 선거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죽을 때까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려면 또 뭐다? 헌법을 바꾸는 겁니다. 근데 6차 개헌은 68년도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명분이 되어줬잖아요.

 

그럼 이번 7차 개헌에도 어떤 명분이나 그런 사건이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바로 72년도에, 몇 년 전만 해도 북한하고 전쟁한다고 으르렁 거리던 상황인데 북한하고 통일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는 겁니다.

 

이게 바로 74 남북 공동성명이죠.

 

 

우리나라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는 대박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런 통일 기후에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1-2차 미소 공동위원회 사이에 등장한 트루먼 독트린 기억나시나요?

 

트루먼 독트린 이후로 미국과 소련이 냉전 체제로 들어갔었죠.

 

근데 1969년에 세계적으로 닉슨독트린이 나오면서 냉전이 완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냉전의 영향이 있었어요. 북한에는 소련이, 남한에는 미국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위에 있는 미소가 화해한다? 우리도 해야 하는 거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 7.4 남북 공동 성명이 나오게 된 겁니다.

 

이 7.4 남북 공동 성명이 나오고 박정희가 하는 말이,

 

'통일의 여지가 보이니 우린 똘똘 뭉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 될 가능성이 있다'

 

똘똘 뭉치는 것과 대통령을 4번 하는 게 무슨 관계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렇게 7차 개헌을 시작합니다.

 

 

7차 개헌유신헌법으로 더 유명하죠.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잡고 간선제를 실시합니다.

 

그런데 임기를 잡는 거 자체가 의미가 없죠. 왜? 간선제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뽑는 거라 했습니다.

 

근데 당시 국회는 박정희가 주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즉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투표하는 게 뭐가 의미가 있냐는 거죠.

 

 

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모여서 투표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99%가 넘어갑니다.

 

북한에서 서로 종이 쪼가리 들면서 다 찬성하고, 김정은이 손 한 번 흔들면 전부 와~~ 하는 그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쟤네 뭐 하냐? 이러잖아요. 근데 이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거예요. 

 

 

유신헌법을 앞세운 체육관 대통령의 탄생

 

 

아무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으니, 6년이라는 기간이 의미가 없죠.

 

즉 이를 통해서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겁니다. 또 대통령에게 권한을 어마어마하게 줍니다.

 

바로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힘, 그리고 국회의원 1/3을 임명할 수 있는 힘.

 

 

생각해 보세요. 7차 개헌, 유신 헌법으로 대통령 선거를 간선제로 바꿨죠?

 

그런데 국회의원 1/3을 대통령이 뽑는다..? 이건 그냥 계속 대통령 하겠다는 소리입니다.

 

 

 

원래 우리 정부는 3권이 분리되어 있어요.

 

국회는 입법부, 법원은 사법부, 대통령은 행정부로 분리되어 있는 상황 속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의 의원을 뽑는다?

 

3권 분립은 개뿔인 겁니다. 이렇게 뽑힌 의원들을 유신정우회라고 해요.

 

 

유신체제 정말 독특하죠?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뽑도록,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뽑도록 바꾼 거예요.

 

당연히 반발이 많죠. 반발이 많으니까 긴급조치권을 통해서 찍어 누릅니다. 쉽게 말하면 헌법을 정지시키는 거예요. 

 

민주주의 공화정 체제에선 헌법이 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최상위 법인데, 이걸 정지시키는 말도 안 되는 모습.

 

 

 

이러면서 사회가 말 그대로 얼어붙은 겨울 공화국이 됩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거죠.

 

70년대 이런 환경 속에서 추억이라 봐야 할까요? 장발단속을 합니다. 길을 걷다 머리를 잡히고 잘리는 겁니다.

 

장발 단속

 

1895 을미개혁에 있었던 단발령도 아니고 무슨.. 그리고 여자들 같은 경우 미니스커트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남자 경찰이 무릎에서 길이를 잽니다. 거기다가 자를 집어넣어요. 지금이면 난리가 나겠죠?

 

그러나 이 당시에는 이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거였습니다. 유신체제가 정말 비정상적인 게 느껴지시죠?

 

무리하게 정권을 유지하다 보니 나오는 모순..  당연히 이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도 많았습니다.

 

 

 

당시 언론에서 언론자유 수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으로 동아일보 백지사건.

 

 

동아일보 백지광고

 

 

거의 백지인 거 보이시죠?

 

 

이게 왜 이러냐면 신문사가 운영되려면 광고가 실려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동아일보가 박정희 정부의 독재를 비판하자 정부는 광고주들한테 압박을 넣는 겁니다.

 

'야! 광고 주지 마!' 이러면서 광고란이 싹 비어버리게 됩니다.

 

 

이때, 그 비어있는 하얀 여백을 채워 넣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광고란을 채웁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최종적으로는 그들의 문구가 하얀 여백을 모두 채우게 되죠. 민주주의 대한 열망이 광고란을 가득 채운 모습.

 

 

 

그리고 학생들도 가만있지 않았어요.  민청학련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학생이건 뭐건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 민청학련사건을 북한의 사주 아래 행해진 운동이라며 탄압합니다.

 

심지어는 이들의 배후세력이 인민혁명당이라며 (소위 인혁당 사건) 여기서 잡았던 사람들은 사형시킵니다.

 

보통 사형선고가 나고 나면 정말 죄를 지어서 사형할만한지 기다려봐야 합니다.

 

근데 사형선고가 나자마자 바로 집행해 버려요.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할 정도로 가슴 아팠던 사건입니다.

 

 

 

여기에 대한 저항으로 76년 3.1 민주구국선언, 이런 것들이 나오면서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더라.

 

그 저항의 과정에서 79년에 YH 무역 사건이 일어납니다. 가발을 만들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던 공장이 있습니다.

 

근데 이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여성들이 '회사 운영 더할 수 있게 해 달라. 잘리면 우린 먹고살 수가 없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

 

하면서 야당 당사에 들어와서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신정부가 야당 당사에 공권력을 투입합니다.

 

 

 

기본적으로 공권력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야당 당사, 종교시설, 학교 이렇게 세 곳인데, 이미 학교는 마음껏 들어가고 있고

 

남은 두 군데는 그나마 성역처럼 취급하고 있었는데 그 야당에 들어갑니다. 진압과정에서 여성 노동자가 떨어져서 죽기까지 합니다.

 

정말 아비규환이었죠.

 

 

 

이 야당을 이끌고 있던 김영삼 총재가 말합니다. 대체 외국 세력, 외신들은 왜 이 독재정부를 해외에 보도하지 않느냐고요.

 

김영삼이 박정희 정부의 야당 진압건을 격렬하게 비판하자 품위유지 위반으로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시킵니다.

 

이런 막장인 박정희 정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부산과 마산에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진행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부마항쟁입니다.

 

 

 

당장 나라가 개판인 마당에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없지 않겠냐며 시위를 벌인 건데 여전히 개선보단 탄압하려 했습니다.

 

부마항쟁을 어떻게 진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과정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오른팔과 왼팔이 의견 대립이 일어나죠.

 

의견 대립이 붙는 과정 속에서 결국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차지철,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쏩니다

 

(차지철은 부마항쟁을 강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1979년에 일어난 10.26 사태. 이러면서 박정희 정부가 무너지는 거예요. 18년의 박정희 정부를 쭉 훑어봤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끝이 너무 안 좋죠? 끝이 안 좋았던 이유, 그 배경은 역시 과한 욕심이었습니다.

 

60년대 경제성장의 개발 속에서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18년간의 독재를 감행하죠.

 

독재자가 물러나고, 이제 민주주의 봄이 오나 싶지만,, 또 군인이 등장합니다.

 

 

 

 

4. 전두환 정부

 

앞의 역사로부터 과오를 배우기보다 그저 선례로 인식한 전두환은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이미 앞의 박정희가 군사 정권을 통해 독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거죠.

 

그들을 우리는 신군부라고합니다. 새로운 군인. 신군부는 1979년에 12.12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합니다. 쿠데타죠.

 

 

이 12.12 사태와 함께 최규하 정부가 우선 들어섭니다. 

 

근데 이 최규하는 박정희 밑의 총리였어요. 전국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박정희 독재 정부를 타도했는데 변하질 않는 겁니다.

 

정권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군인이 정치를 하는 비정상적인 모습. 당연히 사람들은 저항할 겁니다

 

 

 

바로 1980년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광주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당시 군인들이 모든 행정을 장악하기 위해 선포해 둔 계엄령을 해지하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유신헌법도 철폐하라고 합니다. 모두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올바른 주장이었지만, 그냥 진압해 버립니다.

 

진압의 과정 속에서 계엄군에 대한 반격을 위해서 시민군이 조직되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현대입니다. 옛날처럼 관군이나 백성이나 쥐고 있는 무기가 별 차이 없을 때는 모르겠지만, 현대란 말입니다.

 

열악한 시민군을 대상으로 계엄군은 헬기까지 띄우며 고립되어 있는 시민군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죠. 5.18 민주화 운동, 여기에서 있었던 모든 기록들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여정을 기록한 것은, 온 세계가 다 함께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죠.

 

이 5.18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자가 바로 전두환, 노태우입니다.

 

이들이 중심으로 만든 비상조직. 마치 5.16 군사 정변 때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떠오르죠?

 

똑같습니다. 12.12사태가 일어나고, 5.18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고 만든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 줄여서 국보위라고 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유신체제와 동일합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합니다.

 

 

 

박정희는 반공체제라고 해서 정부의 말에 거역하는 자들을 빨갱이로 몰아갔죠?

 

전두환의 국보위에선 가장 먼저 이름도 유명한 삼청교육대를 만듭니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정신교육 명목으로 보내버리죠.

 

연병장이 있으면 그 연병장을 대각선으로 개처럼 끝자락에다가 개 밥그릇 가져다 놓고, 개처럼 기어가서 먹도록 시킵니다.

 

삼청교육대 (1)

 

삼청교육대 (2)

 

 

그리고 반대하는 언론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기본법을 제정합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거죠.

 

신군부에 저항하는 시민, 언론들을 이렇게 꽉 잡아두고 개헌을 진행합니다. 벌써 8차 개헌이죠?

 

대통령제를 간선으로, 임기를 7년. 그리고 단임제로 바꿉니다. 앞의 유신 헌법 (7차 개헌)과 아주 유사한 형태입니다.

 

유신은 간선제, 그리고 6년 임기였습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유신체제에서는 대통령 연임에 제한을 두지 않죠. 

 

 

 

 

또 유신체제 때 간선제로 대통령을 뽑는 곳은 통일주체국민회의였습니다.

 

이번 전두환 정부의 8차 개헌 이후로는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뽑도록 합니다.

 

이게 말만 다르지 똑같아요.  체육관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손뼉 치면서 뽑는 겁니다. 

 

개헌한답시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유신체제와 다른 건 단임제 라는 것 뿐이었죠.

 

 

 

 

이때 등장한 단어가 5 공화국입니다.

 

1 공화국은 이승만 정부,

2 공화국은 장면

3 공화국은 60년대 박정희

4 공화국은 유신체제

5 공화국은 전두환 정부

 

이건 외울 필요가 없고, 그냥 전두환 정부의 키워드로서 '5 공화국'만 눈에 익히시고 지나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전두환 정부가 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이 있어요. 

 

앞에 있었던 강압적인 유신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며 각종 유화책들을 실시하죠.

 

삼청교육대, 기본법 등 탄압하는 면도 있었지만 풀어주는 면도 있었던 겁니다.

 

 

예를 들면 통금 해제, 원래는 12시만 되면 사이렌이 울려서 이후에는 돌아다니면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허용해 주고, 교복자유화를 실시합니다. 또 중학교 의무교육도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죠.

 

특이한 건 프로야구도 전두환 정부 때부터 출발한다는 점. 이렇게 민심을 얻나 싶더니, 사고를 칩니다.

 

 

바로 1987년 발표한 4.13 호헌조치입니다. '호' '헌' 헌법을 지키겠다는 겁니다.

 

어떤 헌법을? 앞에서 했던 8차 개헌을. 이게 무슨 말이냐? 

 

8차 개헌 이후 대통령을 뽑는 주체는 대통령선거인단. 즉 국민이 아닙니다.

 

체육관에 모여서 찬성률 99.9%의 의미 없는 투표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소리죠.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원치 않았습니다. 국민의 격렬한 저항으로 나타난 게 바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입니다.

 

이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있습니다. 호헌조치도 문제지만, 박종철 학생을 끌고 가서 물고문을 하다가 죽여버립니다.

 

그러고선 하는 말이,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죽었더라. 유명하죠?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니까 더욱더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서 호헌철폐, 독재 타토를 외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서 쓰러지게 됩니다. 결국은 죽죠.

 

이한열 열사

 

마치 박정희를 하야시킨 4.19 혁명 때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죽은 것처럼..

 

 

6월 민주항쟁이 전국적 확산이 되다 보니까 집권당인 민정당을 이끌고 있었던 노태우가 6.29 민주화 선언을 합니다.

 

직선제를 수용하죠. 그러면서 전두한 정부의 마지막 개헌. 9차 개헌이 이루어집니다.

 

수용한 직선제와 함께 임기는 5년 단위. 그리고 단임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1987년에 완성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이 개헌에 의해서 대통령 선거를 했는데 야당이 분열해요. 그 과정 속에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죠.

 

 

개헌사와 저항사를 함께 알아봤는데 어떠신가요?

 

이 역사를 알고 나면, 우리의 역사가 제법 부끄럽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렇다고 묻어둘 순 없는 노릇입니다.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약속을 지키도록 우리가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민주주의를 탑재한 현대인이 되는 거죠.

 

 

 

노태우 이후로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차례로 있지만 

 

이번 글은 민주주의의 확립까지 개헌사와 저항사를 알아보기 위함이기에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다음 글은 현대사의 경제, 한국사의 마지막 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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