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광복 ~ 6.25 전쟁

[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이제 현대사 단 3편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정말 많으셨습니다.

 

현대사에서는 저희가 배워야할 지점이 정해져있습니다. 첫 번째 지점은 우리의 광복과 함께 찾아온 분단입니다.

 

너무 아파요. 분단을 통해서 우리가 갈가리 찢겨지는 모습들을 만나게 될겁니다.

 

 

이유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였습니다. 누구는 자본주의, 누구는 사회주의. 서로 반목하고, 심지어는 증오하는 모습들을 보이죠.

 

그 과정에서 사람보다 이념이 먼저였던 시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사람보다 이념이 먼저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실겁니다.

 

제주 4.3사건 , 여수순천 11.9사건. 그리고 6.25전쟁까지요.

 

나랑 생각이 다르면 죽여도 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지배되었던 시기가 있었다는거죠.

 

 

 

또 그런 경험을 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거죠.

 

우리의 과오를 돌아보며, 그땐 어떤 아픔을 겪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 그걸 알아가면서 다신 반복하지 않아야 겠구나.

 

이게 역사를 배우는 이유입니다. 종종 일제강점기보다 이 파트가 더 화난다는 분들이 있어요.

 

장장 몇 천년의 역사를 배우면서 한반도에 애정이 생겼는데,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이렇게 쉽게 둘로 갈라지니까요.

 

 

 

0-1) 광복의 배경

 

 

1940년대에 들어서면 일제가 패망의 길로 접어들죠.

 

마치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세계열강들이 파리강화회이를 통해서 전후질서를 논의하듯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니까 전후질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카이로 회담이 열렸습니다

 

놀랍게도 여기서 우리의 독립이 약속되죠. 우리의 광복 . 1945 8 15은 우리 힘으로 찾은게 아닙니다.

 

 

 

일본이 너무 급하게 패망하는 바람에 손을 써볼 수 없었어요.

 

이미 우리는 한국광복군 까지 만들어서 국내 진공 작전 계획까지 다 세우고 있었는데

 

그걸 하기도 전에 일본이 망해버리고,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에 점령군 형태로 들어와버리죠.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린 굳이 왜 싸웠죠? 안싸워도 이렇게 1945 . 광복이 왔을텐데.

 

어차피 우리 힘으로 독립을 한게 아니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싸울 필요가 없잖아요? 

 

..

 

 

당시 외국 열강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존재를 알기나 했을까요? 애초에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열강 중 하나, 일본의 식민지였죠.

 

만약 일본의 패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냥 일본이 한반도를 관리하는거로 땡, 이렇게 종전을 매듭지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영원히 식민지가 되는겁니다. 실제로 영국이나 미국은 우리나라의 독립엔 관심도 없었습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우리의 광복이 약속된게 왜 놀라운지 아세요?

 

미국, 영국, 중국 수뇌부가 모인 카이로 회담에서 단 우리나라만이 식민지 해방을 약속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식민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시나요? 그 수많은 식민지 속에서 코리아, 단 하나의 이름만이 독립을 보장받은겁니다.

 

특수조항으로 들어가죠. 우리가 싸웠기 때문에 가져온 결과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세계로 알린 결과죠.

 

이런 결과를 알고 나시면, 앞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시겠죠?

 

 

 

좋습니다. 카이로에서 독립이 약속된건 43년이고, 45년에는 알타회담이 열립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군수산업을 폐쇄하거나 몰수한다고 결정한 회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영향들 속에서 1945년 광복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1. 광복 이후

 

광복이 되기 전, 우리가 해외에서 어떤 활동을 했었죠?

 

여운형의 조선 건국 동맹, 그리고 김구에 의해서 운영된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 두 조직과 함께 광복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광복과 함께 찾아온건 분단이라는 비극이었습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 정확합니다. 이때의 분단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와서 점령하기 위해 눈독을 들입니다.

 

일본이 점령하고 있었던 식민지 조선을 어떻게 못 삶아먹나? 하면서요.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38도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나눕니다.

 

이 선은 자기들끼리 그은 선입니다. 심지어는 긋는데 불과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한반도 운명이 너무나 가볍게, 열강들의 무심한 손짓에 의해 결정된거죠.

 

 

 

아직 실질적인 분단은 아니지만, 당시엔 이 형태가 지속될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엇을거에요.

 

광복이 되자,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건국동맹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줄여서 건준이라고도 합니다.

 

이 건준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광복되자마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바로 치안입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일본이 패망했기 때문에 권력이 공백상태가 되는겁니다.

 

권력이 공백화가 되면 약탈, 폭력, 방화 등의 일이 일어날 수 있죠. 무정부니까요. 아직 미국이 들어오기 전이란 말이에요.

 

 

8.15 광복부터 미군이 들어오는 9월까지, 고작 한달 남짓한 시간이지만, 무정부 상태이니 만큼 치안 유지를 아주 중요히 여겼습니다.

 

이 건국준비위언회는 좌우합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이 점령군 형태로 들어온다는 소식에 건준은 협상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해버립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들어와서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지방에선 인민위원회를 구성해서 중앙과 지방을 함께 장악해나갔죠.

 

 

 

그런데 미군이 들어오면서 일체 미군정 이외의 모든 행정조직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을 모두 부정하죠. 심지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차도 부정합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해요.

 

 

 

일제강점기 동안 8년여 대장정을 통해 충칭에 와서 한국광복군을 만들고 일제 타도를 위해 노력했던 정부가 임시정부 아닙니까.

 

 그런 정부마저 인정받지 못하는겁니다. 김구의 입국 자체를 거절해서 결국  몇 달 뒤에 개인 자격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아닌, 그냥 일반인 김구로요. 이때부터 뭔가 이상합니다. 느낌이 안좋죠?

 

 

 

미군은 남측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사정은 아무 신경을 안씁니다. 오로지 광복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안정을 빨리 취하는 것이 목표.

 

그래서 미군은 맥아더 포고문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을 위해서 일했던 공무원들을 터치하지 말라합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정의를 세우는 겁니다. 즉 친일잔재 청산인데, 이걸 금지시킨거죠.

 

이건 한국인의 숙명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식민지 당사자가 아니니 와닿지가 않고, 케어할 이유도 없는겁니다.

 

우리 민족의 정의? 관심 밖이었죠. 이렇게 되면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미루는거에요.

 

 

친일잔재 청산의 미룸과 함께 우리 한국의 통치 문제는 외국으로 넘어갑니다.

 

미국, 소련, 영국 3개국이 모여서 한국의 처리를 두고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열립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는 3가지를 결정하는데

 

첫 째, 임시정부의 새로운 수립

 

둘 째, 신탁통치

 

셋 째, 한국의 문제를 조금 더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해서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

 

 

 

 

앞에서 조선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모두 부정했었죠?

 

이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한국이 일정 기간 신탁통치를 받는걸 동의하면, 우리가 운영하는 임시정부의 수립을 약속해준겁니다.

 

(임시정부 수립이 되더라도 신탁 통치 내의 어떤 결정권은 신탁 통치국가가 갖겠다는 소리)

 

 

 

그런데 맨 처음에 모스크가 3국 외상 회의의 내용이 한국으로 넘어올땐, 신탁통치 내용 밖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는 오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정말 오보였는지, 의도적 오보였는지는 아직도 모르죠.

 

아무튼 신탁통치 얘기만 보면 누가 찬성하겠나요.

 

우리 광복햇는데, 신탁통치를 또 한다고? 이러면서 당시 좌,우 모두 반대합니다.

 

 

하지만 좌익세력들이 자세히 알아보니, 임시정부 수립도 약속해주는 겁니다.

 

임시정부만 수립되면 우리가 정치를 주도하며 통치기간을 줄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좌익세력은 찬성의 입장에 섭니다.

 

 

 

반대로 우익세력은 신탁통치라는 사항에 집중하여 어떤 경우도 신탁통치는 안된다며 결사 반대합니다.

 

이렇게 좌와 우의 입장이 달라지면서 좌우의 엄청난 대립이 시작됩니다.

 

좌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조선공산당 출신의 박헌영, 반대쪽에 앞장섰던 인물은 우익진영의 이승만과 김구.

 

 

 

문제는 뭐냐면, 이 좌우 대립의 과정 속에서 갈등이 되게 심해집니다. 이 씨앗이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 6.25까지 연결될겁니다.

 

그리고 이 좌우대립은 대립 자체도 문제지만, 하나 더 문제가 있습니다.

 

광복되자마자 처단해야할 친일파 청산이 맥아더 포고문에 의해 미뤄지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우익 세력 쪽으로 스며듭니다.

 

처단되어야할 친일파들이, 좌익세력을 때려잡는 반공투사로 변신을 시도하는거죠.

 

즉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로 좌우가 갈라지고, 이때 친일파들이 껍데기를 탈피하며 우익 세력에 흡수된 것. 두 문제가 생깁니다.

 

 

 

시간이 지나 46년에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약속했던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립니다.

 

근데 여기에서 미국과 소련이 대립합니다. 이유는 1차 미소 공동위원회에 참가하는 단체의 자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이겁니다.

 

 

 

각자의 입장을 보자면 미국은 자유 참가

 

소련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에 의해 열리는 미소 공동위원회이므로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를 지지하는 세력만 참가

 

 

당시 미국은 우익단체를, 소련은 좌익 단체를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많은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려면 자유 참가를,

 

그들을 배척하기 위해서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를 지지하는 좌익 단체만을 입장시켜야 했습니다. 각자의 이익이 충돌하는 형태죠.

 

 

우익과 좌익이 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드리자면

 

좌익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진보와 혁신, 사회주의적 사상을 말합니다.

 

우익은 경제적 자유와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자본주의 사상을 말합니다.

 

 

이 좌파와 우파의 나뉨은 민족주의의 분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있었던거 기억나시죠?

 

과거 민족주의에서 분열한 자치론자 (일본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힘을 길러 자치권을 행사하자) 가 우익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일제의 감시 하에서 힘을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제의 타도가 우선이다) 가 좌익으로 이어집니다.

 

이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손 잡은 사회주의세력까지 포함하여 좌파 세력이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익 = 친일파 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돌아와서, 당시 우리나라에 북은 소련, 남은 미국이 들어왔잖아요?

 

북측 조선공산당은 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를 지지하는 좌파인 것이고,

 

남측 임시정부의 김구, 이승만 측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우파인 것이죠.

 

친일파들이 우익 세력에 붙어 좌익 세력, 빨갱이를 처단하자며 자신들의 죄를 잊게 만들려 했었죠.

 

 

 

결국 1차 미소공동위원회는 합의점을 찾지 못해 휴회됩니다.

 

근데 이때, 이승만이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보며 한반도가 하나의 정부로 성립되긴 어렵겠다고 생각합니다.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차지한 이 모습이 그대로 고착될 가능성을 보곤 정읍에 가서 외치죠.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빨리 수립해서 북쪽의 소련을 격퇴시키자' 이게 그 유명한 이승만의 정읍발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북한도 정부가 수립될 수 있다는 얘기죠.

 

비록 광복과 함께 남과 북에 미군정, 소련이 들어와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분단의 길로 갈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승만의 정읍 발언과 함께 분단의 위기의식이 고조화됩니다.

 

고조화되는 분단 위기 속, 분단은 막아야 한다며 서로 싸우지 말고 뭉치자는 운동이 전개됩니다. 바로 좌우합작운동이죠.

 

이 좌우합작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은 앞에서 얘기한 여운형, 김규식입니다. (좌/우)

 

 

 

좌익의 대표인물 박헌영과, 우익의 대표인물 이승만/김구는 서로 완전 극사상주의라 너무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이들처럼 너무 치우치지 않고, 중간쯤에 있지만 좌와 우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한 것이죠.

 

좌우합작운동은 미 군정도 지지해줄 정도로 상당히 합리적인 운동이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좌우 합작 7원칙까지 발표하죠.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2차 미.소 공동위원회를 빨리 열자

- 친일파들을 청산하자

-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보시면 아시겠지만 좌와 우, 그리고 공통의 목표가 모두 들어가있습니다.

 

좌익의 미소 공동위원회 지지, 우익의 친일파 청산, 공통의 목표 임시정부 수립까지. 매우 합리적인 운동이었죠.

 

 

 

그러나 이토록 합리적인 좌우 합작운동은 갈 수록 힘이 약해집니다. 정치인들은 선명한 색을 보여줘야 힘을 받는 법이죠.

 

좌와 우, 어느 쪽도 선명하지 않은 그 가운데쯤 있는 이도저도 아닌 융합세력은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극 좌파 박헌영, 극 우파 이승만김구가 참여하지 않아 결국은 힘을 잃죠.

 

 

그렇게 미군정의 지지도 철회하게 되고, 심지어는 여운형이 암살당하면서 좌우합작운동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갑니다.

 

통일의 굉장히 중요한 기회를 놓친거에요.

 

 

그러면서 미국에서 아주 놀라운 선언이 나타납니다. 1947. 트루먼 독트린 선언. 이 선언은 냉전의 신호탄을 쏘아올립니다.

 

열전의 반대말입니다. 열전이란 폭탄쏘고 총쏘고 하는거고, 냉전은 그러진 않지만 서로 으르릉대는겁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이 나뉘어서 서로 으르렁대는게 냉전입니다.

 

 

트루먼 독트린이 선언된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이 화해할까요? 아니죠.

 

이후 열린 2차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또 대립합니다. 그 이유는 변한게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참가 자격 문제로 다툽니다.

 

결국 2차 미소공위는 완전 결렬되고, 미국은 이 문제를 UN으로 이관해버립니다.  우리 한반도의 운명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

 

2차 미소 공위가 결렬되고 UN으로 이 문제가 이관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봅시다.

 

광복 ~ 2차 미소 공위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UN은 한국에게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하라고 합니다. 

 

동시에 UN은 한국에 임시위원단을 파견합니다. 그런데 이 임시위원단의 북측 입국을 소련이 거절합니다.

 

당시 UN은 미국의 입김이 강한 상태여서, 그들이 선택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도 미국에게 유리한 안건이었습니다.

 

남측이 인구가 더 많았거든요.  이 상황 속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면 남측이 주도하는 나라가 될게 뻔했습니다.

 

 

 

 

이에 소련이 입국을 거부하고, 다시 1948년에 UN 소총회로 문제가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가능 지역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라고 합니다. 그 결과 남측에는 5.10 총선거가 실시됩니다.

 

 

 

총선이 누구를 뽑는거냐면 국회의원을 뽑는겁니다. 대통령도 안 뽑았는데 왜 국회의원을 먼저 뽑을까요?

 

여러분, 한국은 공화정 체제를 향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운영되려면 법이 먼저 있어야 겠죠? 대통령도 법 아래에 있는게 공화정 체제니까요.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 (입법부) 입니다.

 

그러니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에 의해서 헌법이 만들어지고, 그 헌법에 의해서 대통령이 차출되는게 올바른 순서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5.10 총선이 열리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입니다.

 

보통선거는 남녀노소 일정한 연령이 되면 투표할 수 있도록 해주는겁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소수에 의해서, 주로 귀족들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근데 근대로 접어들며 해외에서 혁명의 기후 속에서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납니다.

 

투표권이 혁명과 함께 점점 귀족 - 자본가 남성 - 노동가 남성 - 여성 순으로 확장됩니다.

 

 

여러분, 여성의 투표권 역사는 100년도 채 안됩니다. 옛날에는 감히 여자가 투표를 해? 이런느낌이었죠.

 

근데 우리는 이 1948년도 5.10총선, 보통선거가 외국처럼 어떤 혁명의 과정을 거친게 아니라 그냥 들어선겁니다.

 

민주주의가 훅 들어와버리는거에요.

 

 

근데 문제는 5.10총선이 열리게 되면 남한만 정부가 수립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남북의 분단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것이죠.

 

따라서서 5.10총선을 격렬히 반대하는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이건 좌익들에 한정된 모습이 아니라 우익들도 마찬가지 였어요.

 

이러려고 몇 십 년 독립운동을 했냐며 반대하는데, 대표적으로 김구가 있습니다.

 

 

김구의 읍고가 있어요. 아주 유명한 명문이죠.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나는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그러나 비극의 첫 시작, 제주 4.3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5.10총선이 열린다는 소식에 특히나 좌익세력이 아주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이 반대하는 좌익세력들을 소탕하고 잡아들이기 위해서 경찰과 군인들이 투입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까지 죽이는거에요.

 

 

정말 어처구니 없는 방법으로 소탕합니다.

 

한라산에 선을 딱 긋고 그 선 밑으로, 해변가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사람을 다 빨갱이라고 하는겁니다.

 

물론 그 중에서 좌익세력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거기서 말도 키우고있고, 농사를 지어야하는 사람들은 못 내려오잖아요.

 

그런 사람들까지 모조리 빨갱이라고 죽여버리는겁니다..

 

제주도에 가시면 어떤 마을의 경우 제삿날이 다 똑같아요. 왜? 같은날 한 마을이 다 몰살되었으니까.

 

그냥 어디론가 끌려가서 구덩이에다가 세워놓고 다 총살이에요. 말도 안됩니다 정말.

 

이념보다 사람, 아니 사람보다 이념이 먼저면 이런 모습이 나오는겁니다.

 

지금은 이 제주도민에 대한 특별법들이 제정되고, 대통령이 사과도 했죠.

 

 

 

다시 김구 얘기로 돌아와서, 백범 김구는 읍고 이후 직접 북한에 올라갑니다. 그게 바로 남북협상이라는거에요.

 

이 남북협상에는 김구, 김규식이 함께 갔습니다. 이들은 1944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헌에서 각자 주석, 부주석이었죠?

 

올라가서 

당시 소련의 영향 하에 거의 정부를 수립한거나 마찬가지인 김일성을 만납니다.

 

 

정부 수립만을 막기 위해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남북제정당을 여는 등, 노력은 했지만 우린 힘이 없었습니다.

 

세계적 질서 속에서 한반도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우리 운명은 해외가 좌지우지하는 형태였죠.

 

결국 UN에 의해 5.10 총선이 열리게 되고, 여기서 1948. 제헌 헌법이 제정됩니다.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건 대통령 관련 항입니다. 

 

대통령을 어떻게 뽑는지, 임기는 몇 년인지, 단임할건지 등등.

 

 

제헌헌법은 대통령을 간선제에 의해 뽑도록 했습니다.  간선제란 국민이 아니라 국회가 뽑는겁니다. 

 

그리고 국회는 이승만을 선출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죠.

 

제헌 헌법, 초대 대통령 이승만 선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제 해야할게 뭘까요?

 

 

미루고 미루던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 처벌입니다.

 

이들을 확실하게 처단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 외세가 침략하는 상황이 발생했을때 여전할테니까요.

 

외세에 빌붙어 호의호식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그들을 고문하는 자들이 또 생긴다는겁니다.

 

왜? 벌받았다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즉 친일파 처단은 과거를 바라보는게 아닌, 더 건강한 미래를 위한 첫 발걸음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반민특위. 반민특별위원회입니다.

 

그런데 처벌을 못해요.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승만 정부가 협조를 안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지금 집중해야할건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아니라, 남북의 대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장 내부에서 누구를 벌할 처지가 아니니, 나중에 하자는건데 결국엔 또 미루자는 소리죠?

 

미군정이 들어왔을땐 정부 수립해야한다고 미루더니, 정부를 수립하니깐 북이랑 싸워야한다고 미루는겁니다.

 

 

당연히 반대합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국회 프락치 사건을 꾸밉니다.

 

프락치란 간첩인데, '간첩들이 국회에 들어와있다, 그 간첩들은 반민특위 위원들이다' 라며 공작합니다.

 

그러면서 반민특위를 기어코 해체시키고 말죠.  동시에 공소시효를 축소해서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어이가 없죠?

 

 

독일은 아직까지도 나치와 관련된 인물에겐 공소시효를 절대 적용하지 않습니다.

 

더 건강한 미래를 볼줄 아는 자들인거죠. 지금도 나이가 90넘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끌려가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농지개혁을 실시합니다. 자세한건 경제 파트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정부의 주도 아래에서 반민특위, 농지개혁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북한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정말 완벽하게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게 되죠. 이는 결국 6.25로 이어지게 됩니다.

 

 

UN 이관 ~ 6.25 전쟁

 

 

 

 

 

 

3. 6.25 전쟁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은 아마 설명드리지 않아도 흐름은 대략 아실겁니다.

 

북한에서는 이 6.25 전쟁을 조국 해방전쟁이라고 하죠. 

 

해방된 우리와 달리 남한은 여전히 미국의 식민지다. 우리는 이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싸운 것이다~ 포장하는겁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한다?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는데요.

 

그 목적이 대체 뭔진 모르겠지만 그 과정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이후에 서로 더 많은 반목과 증오가 쌓여 아직까지도 분단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절대 전쟁은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6.25 전쟁의 배경을 보면 북한의 경우 소련과 중국이 엄청난 지원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미국의 애치슨 선언이 나옵니다. 애치슨 라인이라고도 하죠?

 

미국이 지켜야 할 극동방위선을 그었는데, 그 방위선 안에 우리나라가 빠져있는겁니다.

 

38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포함시켜야하는데 까먹은건지 남한은 소외된 모습.

 

 

김일성은 이를 보고 오판한거죠. '어? 미국이 남한 버렸네? 난 중국, 소련의 지원도 빵빵하니 이번 기회에 먹을까?'

 

결국 남침을 강행합니다. 정말 전격적으로 소련 탱크를 앞세워서 밀고 내려오니 당해낼수가 없었죠.

 

우리는 순식간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립니다. 조만간 적화통일이 되겠구나 싶은 순간..

 

 

임시로 수도를 부산으로 옮기기까지 하는 상황을 반전시킨 작전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배경에는 역시나 학생이 있었죠. 인천의 반대, 경북 장사리에서 학도병이 장사리 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이는 어떤 반격의 시도가 아닌, 그저 북한의 눈을 돌리기 위함이었어요. 꽃다운 나이의 청춘들이 희생당했죠.

 

그들의 희생을 딧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며 쭉 밀고 올라가는데, 통일이 되나 싶더니 이번엔 중국이 개입합니다.

 

 

중공군의 개입과 함께 흥남 철수. 무기를 버리고 민간인을 싣고 남쪽으로 철수했죠.

 

당시가 크리스마스여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합니다. 

 

쭉쭉 철수하다가 결국 서울을 두고 UN군은 후퇴합니다. (1.4후퇴)

 

이때 서울을 뺏기고, 나중엔 또 탈환합니다. 서울의 주인이 4번이나 바뀐 셈이죠. ( 남 북 남 북 남 ) 

 

 

 

그러다보니 서울에 어떨 때는 인민군이, 어떨 때는 국군이 주둔하게 됩니다.

 

서울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어야할지, 인공기를 들어야할지 목숨을 내놓고 선택해야했죠.

 

그래서 어느 사진을 보면 한 손에는 인공기, 한손에는 태극기를 들고있는 모습이 정말 많습니다. 얼마나 비극입니까?

 

이념 앞에 생존해야 하는 한 인간이 쥐고 있는 두 깃발, 그 깃발에 의지하고 있는 가느다란 생명줄..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더군요.

 

국군이 점령하자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

 

 

 

이렇게 격렬한 전쟁 속에서 소련측이 휴전을 제의합니다. 

 

UN은 받아들이려 했으나 이승만 정부는 휴전을 원하지 않았어요.

 

UN군과 국군이 서울을 다시 빼앗고, 진격하던 참이었거든요. 소련측도 밀리고 있으니 휴전을 제의한거겠죠? 

 

 

 

여기서 공산세력과 UN은 포로 문제로 갈등합니다. 자유송환 VS 자동송환.

 

미국은 자유송환, 포로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가고싶은 나라로 갈 수 있도록 하자.

 

공산당은 포로들이 원래 속해있는 소속으로 돌려보내자. 

 

 

 

이렇게 포로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는데 이승만은 갑자기 임의로 반공포로석방을 해버립니다.

 

어떠한 협의도 없이 풀어줘버리는거죠. 결국 미국 측에서는 이승만 정부와 타협하지 못해요.

 

 

하지만 UN군의 손실도 막대했기 때문에 미군은 휴전을 해야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미국이 남한에 남고, 경제적으로도 지원을 해주겠다는 두 조건을 주고서야 휴전이 성사되었죠.

 

1953년, 마침내 6.25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집니다. 휴전과 함께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여기까지가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그리고 휴전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네요. 사람은 언제나 이념보다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이념을 앞세웠을때, 어떤 비극을 맞이하는지를 저흰 이제 6.25를 배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시험을 칠때도 틀린걸 다시 틀리면 바보라고 자책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할 역사, 6.25 전쟁이었습니다.

 

 

북한의 남침
-낙동강 방어선
-부산 임시 수도

인천상륙작전 
-장사리 학도병

중공군 개입
-흥남철수
-1.4 후퇴

소련 휴전제의 
-휴전회담 (자유VS자동)
-이승만 반공포로석방

휴전(53)
-미군의 경제지원 약속
-한미 상호방위조약

 

 

 

 

 

 

 

 

 

 

 

 

 

 

'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발전과 통일 정책  (0) 2023.07.31
민주주의의 발전  (0) 2023.07.31
1930 -1945 저항  (0) 2023.07.29
1920년대 저항  (1) 2023.07.29
1910년대의 저항 + 대한민국 임시 정부  (1) 2023.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