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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조선 전기 [문화]

[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조선 전기의 마지막 글, 문화편에서는 잡다한 방면으로 조선 전기를 뜯어볼겁니다.

 

고려와 신라편을 읽으셨다면, 문화편에서 어떤걸 다루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겁니다. 또 종교,교육 등등 알아보겠죠?

 

천천히 글을 읽으시면서 조선 전기의 문화를 이해하고, 마지막 키워드 정리로 머릿속에 정리해봅시다.

 

15세기의 주도 세력은 혁명파, 이들이 세조 때 훈구파로 변한 것, 16세기는 온건파가 사림이 되어 정권을 차지한 것. 

 

기본이죠? 그럼 시작!

 

 

 

 

 

1. 종교

 

 

먼저 조선은 유학의 나라입니다. 즉 성리학의 나라죠.

 

그럼 유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많겠죠?

 

중앙에는 성균관,  그리고 4부 학당이라 하여 한양의 동서남북에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고등교육과 제사를, 4부학당은 중등 교육을 담당했죠. 이것들은 모두 한양에 있고, 지방에선 향교라 하여 중앙에서 선생님들을 파견하는 식으로 운영했습니다. 모든게 국가 주도의 교육이죠.

 

그런데 지방에는 국가 주도의 교육 기관 말고도 교육기관이 하나 있었죠?

 

사림들이 인재 양성을 목표로 교육과 제사 모두 진행하는 곳, 서원이라고 했습니다.

 

 

또 유학자하면 16세기 성리학을 이끌었던 사림 중 대표적으로 이황과 이이를 빼놓을 순 없죠.

 

이들의 저서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편이라,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이황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와 함께 사단칠정 논쟁으로 유명합니다.

 

 

사단칠정 논쟁을 말하기 전에,

이황은 한 번하기도 힘든 성균관의 총장직을 여러 번 맡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학문의 경지가 높다고 볼 수있죠. 그런데 그의 논리에 반박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기대승은 당시 20대 대학생 나이에 성리학의 대가 이황에 편지를 씁니다. '이황님의 주장에 틀린 게 있는 거 같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대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총장님한테 지적하는 거죠.

 

이러면 무시하는게 일반적인데, 이황은 기대승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이 둘은 나이 차이가 30이 넘지만 아랑곳않고 토론하기 시작합니다.

 

이황은 토론 도중에 절대 화를 내지 않고, 기대승을 하대하지 않는 점잖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기대승의 의견을 잘 수용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잘 적어 보내죠

 

 

당시 이황은 경상도에 살고, 기대승은 전라도에 살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토론한겁니다

 

그런데 이황은 편지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굳이 서울, 한양을 거쳐서 전국을 한 바퀴 돌아 보냅니다.

 

제자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돌리며 보내는 거죠.

 

'기대승이라는 자가 이렇게 질문했고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거 읽은 다음에 다음 제자 누구한테 보내라' 

 

이런 식으로 서울을 삥 돌아 전라도로 옵니다. 편지 하나를 가지고 마치 전국학술토론대회를 여는 듯한 형국이 나타나죠.

 

이황은 정말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성리학의 발달을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단칠정이란 인간의 본질과 보이는 겉모습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를 얘기하는 것인데, 결국 마지막에 이황이 기대승의 손을 들어올립 

 

조선에서 학문의 최고봉에 오른 자가 한낱 아들뻘 제자에게 인정해 준 것이죠.

 

 

사림들이 유향소, 서원, 향약을 짓는다 했었죠?

 

이황도 예안향약을 짓습니다. 그리고 이황을 모시는 서원의 이름은 도산서원입니다.

 

근데 이황이 활약했을 당시에는 아직까지 사림들이 집권한 시기는 아니라는 점. 아직까지는 훈구와 사림이 대립하는 야당입니다. 

 

근데 이제 이율곡, 선조 이때가 되면 완벽히 훈구가 축출되고 사림이 집권세력이 됩니다.

 

 

이때가 이이의 활동 시기입니다.

 

당시 조선의 과거는 정말 어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국에서 딱 33명을 뽑고, 그중 1등이 되어야 장원급제라는 수식어가 붙죠.

 

근데 이이는 이 어려운 과거시험을 무려 9번이나 장원급제 한 사람입니다. 상상이 안 가죠? 우리 역사에 단 한 명뿐인 기록입니다.

 

이이의 저서로는 <동호문답> <성학집요>가 있습니다.

 

 

이제 불교를 볼 건데요, 사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를 얘기하는 건 별 의미가 없죠.

 

정도전이 쓴 책 기억나시죠? <불씨잡변> 부처의 잡소리라는 뜻이죠. 이렇게 불교를 초기부터 억압하는 모습인데 발달하겠습니까?

 

숭유억불 정책이 기본적 정책의 노선이었죠 (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 )

 

이런 숭유억불 정책에 기반한 제도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승려 면허증인 도첩제, 보통 승려가 되면 도를 닦겠다고 출가하여 산이나 절로 갑니다.

 

근데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출가란 아주 불효막심한 행위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승려가 되지 못했죠.

 

 

 

그리고 선종, 교종 등 복잡한 교단들을 정리했습니다. 특히 교단 정리에 앞장섰던 왕은 바로 세종입니다.

 

근데 사실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 성리학자들한테 불교는 매우 터부시되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백성들의 삶 속에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 특이하게도 세조는 불교를 좋아했습니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입니까?

 

자기 조카까지 죽이며 손에 피를 묻히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후회를 많이 하며 불교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세조 때에 <석보상절>이라고 부처님의 일대기를 써놓는 책, 그리고 불교 경전을 만드는 간경도감도 생기죠.

 

불교는 이게 끝입니다. 뭐 없죠? 

 

 

 

 

2. 서

 

이 질문은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는데.. 역사서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알리고, 위대함과 우수성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조선의 경우,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던 명분이 필요했던 지배층은 <고려 국사>를 편찬합니다. 바로 정도전이죠.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가 있다. 고려말기 도단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고려사>가 있습니다. 고려사는 앞전 김부식의 <삼국사기>처럼 기전체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고려사절요> , <동국통감>,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실록> 실록을 편찬하는 기관은 춘추관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역사서라기보단 시문집이 하나 있습니다. 서거정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쓰인 <동문선>, 역대 좋은 시들을 모아놓은 문집입니다.

 

16세기로 가면 사림 집권기라 굉장히 성리학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서가 나옵니다.  이이의 <기자실기>

 

이렇게 역사서도 봤고요, 지리, 법, 윤리, 음악 등등 기타 서들은 가볍게 보고 갑시다.

 

 

역사서가 정통성을 알리기 위함이라면, 지리서를 쓰는 이유는 뭘까요? 15세기 당시 지배층의 목적은 ‘중앙집권’인걸 생각해 봅시다.

 

그러려면 중앙에서 지방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어야겠죠?

 

이때 만들어진 지도 중에서 유명한 지도가 있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죠. 이 지도가 만들어진 시기가 태종 이방원입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편이니 알아두시면 좋겠죠?

 

 

그런데 지도를 보면 중국과 우리나라가 엄청 크고 다른 나라는 엄청 조그맣게 그려져있습니다.

 

중화사상이 반영된 관념적 지도라 그렇습니다. 일본은 아예 점에 가깝죠.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고, 그런 중국의 법통을 잇는게 한국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철저히 투영된 지도입니다.

 

<동국여지승람> 그리고 16세기 중종 때 이를 새롭게 만든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서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제 법과 윤리, 음악을 볼 건데 법은 우리 이미 공부했죠?

 

조선 시대를 이끌고 있던 법전 <경국대전>, 세조 때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윤리로는 세종<삼강행실도> 삼강은 충신, 효자, 열녀로 유교 사상에서 높게 쳐주는 인물상입니다.

 

그리고 나라에 즉위식과 같은 큰 식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써둔 <국조오례의>

 

여기서 그치지 않고 16세기로 가면  <이륜행실도>가 편찬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이 중종 때 편찬되었습니다.

 

마지막, 음악의 <악학궤범> 근데 제가 말한 서들 중에, 왕을 알려드리지 않은 서들이 꽤 있죠?

 

<동국통감>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이 모든게 성종 때 편찬된 것입니다.

 

세종과 성종이 조선파트에서 출제 빈도가 가장 높은 만큼 여러면으로 업적이 많습니다. 세종과 관련된 서를 좀 더 볼까요?

 

<의방유취> 의학서, 처방전 등을 다 취합해서 만들어낸 의학 백과사전입니다.

 

<향약집성방> 이건 처방전 만을 모아둔 건데, 의방유취와 무슨 차이냐면 중요합니다.

 

‘향’이라 함은 우리 동네입니다. 즉 우리 지역에서 나는 약재로 가능한 처방전을 정리한 거죠.

 

처방전이 있는데 중국 약재를 쓰면 이걸 봐도 무슨 소용이 있냐 이 말이죠.

 

<농사직설> 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농상집요>라 해서 원에서 가져온 농서를 썼는데, 토양과 날씨 등 원나라와 조선은 차이가 있을테니 우리만의 농서가 필요했죠.  그리하여 우리 농민들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여기까지 모두 세종이 이룬 것입니다.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내용이니까 잘 봐두시길 바랍니다.

 

또 의학서와 농서에서 세종 때 말고 성종 때 만들어진 게 있습니다. <금양잡록> 금양은 지역명인데, 강희맹이 쓴 농서입니다.

 

 

3. 문자, 인쇄

 

 

우리나라는 인쇄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특히 고려는 정말 대단했죠. 조선 시대도 고려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먼저 태종 때, 활자를 만들기 위한 주자소를 만듭니다. 이때 만들어진 활자체를 계미자라고 합니다. 계미년에 만들어진 활자라 그래요.

 

그리고 세종 때 계미자에서 조금 더 진화하여 갑인자가 만들어집니다. 훈민정음이 바로 세종이 만든 거죠.

 

 

아찔한 사실은, 훈민정음은 애초에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 했습니다.  학자들의 반발이 만만찮았거든요.

 

대표적인 훈민정음 창제의 반대세력 인물이라 하면 최만리. 조선은 이미 중국의 위대한 한자를 쓰고 있기에, 새 문자가 필요없다 하죠.

 

이거야말로 사대의 원칙에 어긋나고, 문자가 쉬워지면 학자들이 공부를 안 하게 된다며 극구반대합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참 어리석지만, 당시 유학자들의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시대의 절대적 선이랄까요?

 

우리도 우리 시대의 절대적 선이 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무조건 보내야 해! 당연하죠?

 

근데 이런 우리의 절대적 선도 미래에 가서 보면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시대의 한계에 스스로 갇혀있는 모습이죠.

 

고려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을 만든 금속활자기술을 가지고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은 그 기술이 오직 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자도 마찬가지죠. 지배층을 위한 문자로서 활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진 못합니다.

 

 

하지만 세종이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지식정보량이 점점 늘어나게 되죠.

 

창제 초기에 세종은 훈민정음을 하도 반대하니까 뭔가 결과물을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용비어천가를 편찬합니다.

 

특별한 건 아니고 세종 앞 선대들의 업적을 한글로 정리한 겁니다.

 

 

 

4. 천문, 역법

 

마찬가지로 세종의 활약이 큰 부분인데요, 세종 정말 영향이 안간 부분이 없군요. 

 

이전에 태조가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별과 별자리의 그림인 천상열차분야지도만 봅시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이제 세종대왕의 원맨쇼가 시작됩니다.

 

현존하는 강우량을 재는 도구 중 가장 오래된 기구인 측우기

 

측우기

 

사실 측우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강우량으로 대체 뭘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조선은 농업의 나라죠?

 

세종은 측우기를 통해서 그때마다 기록해 놓았던 빗물의 양, 즉 강우량의 양을 데이터베이스화 해놓았습니다.

 

언제 비가 많이 오고, 언제 비가 적게 오는지를 분석하여 농기를 적절히 분배했죠.

 

 

그리고 자격루

자격루

 

물시계인 자격루의 뜻은 스스로 자, 때릴 격으로 '스스로를 때린다'입니다.

 

물의 흐름을 통해서 정해진 시간에 도달하면 인형이 나와서 북을 치죠.

 

심지어 이땐 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동력으로 이런 기술을 구사해 냈습니다. 정말 물의 힘만을 이용한 기구죠.

 

 

 

그다음 앙부일구. 해시계입니다.

 

앙부일구

 

특히 세종은 해시계를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종로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기득권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조한 것처럼 세종은 시간 역시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던 거죠.

 

당시에는 시간을 아는 것조차 소수의 사람들의 권한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제대로 된 시간의 기준이 없고, 그냥 해 뜨면 농사짓고 해지면 자러 가는 모습이었죠.

 

 

역법서로는 칠정산이 있겠네요. 이순지가 세종의 명에 의해 만든 것인데,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바로 한양 중심의 역법서라는 거죠.

 

이전까지만 해도 역법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받아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중심의 시간, 별자리 등등 살짝 다를 거 아닙니까.

 

그럼에도 우리를 중심으로 한 역법서, 즉 달력이 없었죠.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시간에 대한 주권이 없었다는 겁니다.

 

중국의 시간을 빌려와서 쓰니까요.

 

그런데 세종 때가 돼서 비로소 이제 우리를 중심으로 놓고 달력을 만든 겁니다.

 

이거를 만드는데 참조했던 것은 원나라의 수시력, 아라비아의 회회력이 있겠습니다.

 

 

 

 

5. 건축

 

우선 15세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죠? 그러면 왕이 잘 공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15세기는 궁궐과 성곽 등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짓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궁궐 중에서 대표적인 게 있다면 경복궁이 있겠네요.

 

경복궁은 조선 전기 주로 활용하다가 임진왜란때 불타고, 흥선대원군 때 가서야 중건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경복궁은 흥선대원군때 만든 거라 보시면 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왕들이 주로 활동했던 궁궐은 창덕궁입니다.

 

경복궁 하면 떠오르는 왕은 세종이 있겠죠. 연산군도 있고요. 창덕궁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왕은 영조와 정조입니다.

 

 

그리고 한양 도성을 만들 때 좌묘우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좌측에는 묘가 있어야 하고,우측에는 사직단이 있어야 합니다.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너무 중요한 곳이죠. 그렇게 중요한 종묘와 사직단의 가운데에 경복궁이 있는 거죠.

 

 

그다음 기억해야 할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해인사 장경판전입니다. 해인사 장경판정에 가면 바로 팔만대장경이 있거든요.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 시대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서 만들었던 거 기억나시죠?

 

팔만대장경은 고려 때, 해인사 장경판전은 조선 전기 때 만든 겁니다.

 

목판으로 만든 팔만대장경은 습기를 머금으면 뒤틀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조선의 기술력!

 

장경판전은 엄청나게 덥고, 습한 날씨에도 들어가자마자 아주 시원한 걸로 유명하죠. 덕분에 팔만대장경도 여태 잘 보관된 것이고요.

 

 

 

15세기의 탑은 어떤게 있을까요?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고려의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모델로 만든 탑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이 백탑 앞에서 학문을 논의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백탑파라고 하죠.

 

특히 중상학파들, 대표적으로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이런 인물들이 있습니다. 후기에서 더 자세히 알려드리죠.

 

 

 

15세기는 한양 도성을 세워야 해서 궁궐과 성곽이 필요했다면 16세기는 사림의 시대죠.

 

유향소, 향약, 서원 등등 기억나시죠?  그걸 통해서 자신의 세력을 불러나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서원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최초의 서원 백운동서원을 기억해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원래 백운동서원은 주세붕이 운영하던 것인데, 이황이 왕에게 건의를 합니다.

 

서원이 되게 좋은 취지의 건물이니 지원을 좀 해달라고요.  이때부터 백운동서원의 이름을 소수서원으로 부르게 됐습니다.

 

소수가 사액이란 뜻이거든요. 내릴 , 즉 왕이 자(현판)를 하사해준 거죠.

 

특히 최초의 서원이라는 별명에 맞게 소수서원은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안향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액사원이 되면 국가가 인증한 건물로서 면세입니다. 땅도 주고 세금도 걷지 않고 너무 좋죠.

 

이런 혜택을 출발시킨 게 이황에 의해서 나타나는 모습인 점 기억합시다.

 

 

 

6. 공예, 문학

 

드디어 전기의 막바지에 왔습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양이 꽤 많죠?

 

하지만 여기까지 오셨다면 돌아가긴 늦었습니다. 한국사를 끝내봅시다.

 

 

사실 청자하면 고려죠. 화려한 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청자들.

 

하지만 조선의 청자에 그런 모습은 없습니다. 늘 검소함을 지향하는 성리학자들의 나라라서 그런가봅니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화려한 청자보단 약간 담백하고 깔끔한 청자가 어울리죠.

 

항상 문화는 그 시대를 이끌고 있는 그들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는 거울입니다.

 

공예도 마찬가지로 15세기에는 분청사기가 유행하고, 16세기에는 백자가 유행합니다.

 

 

 

비교적 최근인 조선이라 그런지 여태 남아있는 그림도 많습니다.

 

15세기에는 <고사관수도>

고사관수도

 

그리고 안평대군의 꿈을 그림으로 그려낸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16세기에는 선비들의 절개를 보여줄 수 있는 그림 <사군자>  매난국죽이 이때부터 유행하죠.

 

사군자

 

마지막으로 신사임당에 의해서 그려진 <초충도>

 

 

문학에선 15세기 김시습의 <금오신화>. 최초의 한문 소설이죠.

 

후기로 가면서 한문소설은 박지원의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 유명소설이 마구 탄생합니다.

 

 

그리고 고등과정을 밟으셨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16세기를 대표하는 가사 문학의 최고봉.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번외로 정철은 가사 문학의 대가이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정철은 매우 다릅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을 보면 자연을 아주 멋들어지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지만 정치인 정철은 피로 목욕을 하던 사람입니다.

 

앞에서 배운 4가지 사화 기억나시나요? 무갑기을. 이 네 차례 사화를 합친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게 정철입니다.

 

심지어 단 한 사건으로요. 앞에서 배웠죠? 선조 때의 정여립 모반 사건. 다른말로 기축옥사라고도 합니다.

 

이때 동인당 씨를 말리기 위해  동인들을 쓸어버렸던 서인당, 그 중심에 정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냉혈한 정철이 남겼던 문학작품은 주옥같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내네요.

 

 

여기까지가 조선 전기 입니다. 머릿속에 정리가 되면 후기편으로 넘어갑시다.

 

고생하셨습니다.

 

  유학 불교 역사서 지리서
15C (훈구) 중앙 : 성균관, 4부학당
지방 : 향교
숭유억불 정책
-도첩제
-교단정리 (세종)

세조 : 석보상절, 간경도감
<고려국사> : 정도전
<고려사> 
<고려사절요>
<실록>


<동국통감> : 성종
<동문선> : 성종
통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중화사상
-현존 최고 동양

동국여지승람 : 성종
16C (사림) 서원 증가

[이황]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사단칠정논쟁 (기대승) 

예안향약 -> 도산서원
백운동서원 -> 소수서원

[이이]
<동호문답> <성학집요>
10만 양병설, 수미법

  기자실기 : 이이 신증동국여지승람 : 중종

 

 

  법서, 윤리서 음악서 문자 천문, 역법 의학,농서
15C (훈구) 경국대전 : 세조-성종 <악학궤범> : 성종     <금양잡록> : 성종 (강희맹)
세종 삼강행실도   갑인자
훈민정음 - 용비어천가
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구
칠정산 - 수시력 + 회회력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농사직설>
16C (사림) 이륜행실도 - 중종        

 

 

  건축,탑 공예 그림 문학
15C (훈구) 경복궁 : 우사좌묘
해인사 장경판전
원각사지 10층 석탑
분청사기 <고사관수도> : 강희안
<몽유도원도> : 안건
<금오신화> : 김시습
- 최초의 한문 소설
16C (사림) 백운동서원 - 소수서원 백자 <사군자>
<초충도> : 신사임당
<관동별곡> <사미인곡>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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