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조선은 분량이 정말 많기에, 2개 국가 분량으로 나누어 글을 쓰려합니다.
조선 전기 / 조선 전기의 문화 등등 / 조선 후기 / 조선 후기의 문화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보면 축약해서 별거 없어보이긴 한다만 외교,정치 등등 잡다히 할게 꽤 많습니다.
그래도 조선까지 끝나고 나면 한국사의 70% 를 끝냈다고 볼 수 있죠. 힘내서 가봅시다.
0-1. 조선 시기 구분
조선도 고려처럼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려의 분기점이 무신정변이라면, 조선의 분기점은 임진왜란이죠.
1592 임진왜란. '일오구 있을순 없다' 라고 하면 잘 외워지실겁니다.
마찬가지로 전기와 후기를 또 역사 주도 세력, 즉 지배층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조선 전기는 15세기 혁명파 사대부들의 훈구파 세력, 16세기는 그에 대항하는 사림파로 나눌 수 있죠.
고려 시대랑 비슷하죠? 고려 전기를 고려 초기 호족, 고려 중기 문벌로 나눈 것처럼요.
1. 조선 초기
조선을 세운 사람들은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죠.
이들은 고려 말 권문세족들과 부딪히고, 그들의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을 장악한 뒤 조선을 세웠습니다.
정치 권력은 위화도 회군, 경제 권력은 과전법을 통해 장악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을 세우는 당시에도 내분이 있었습니다.
신진사대부 내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혁명파 사대부와 ‘그건 아니지, 어찌 신하가 왕을 폐할수 있냐’ 라며 고려 왕조 내에서 개혁하자는 온건파 사대부로 나뉘었습니다.
먼저 혁명파 사대부의 대표적 인물로는 정도전이 있습니다. 반면에 온건파에는 정몽주가 있었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무조건 아실겁니다.
어쨋건 조선이 건국된걸 보아 혁명파 사대부가 승리했겠죠?
신라, 고려에서 저희 이미 많이 했습니다. 나라를 세우면 제일 먼저 해야 할게 뭐죠?
바로 왕권강화. 즉 중앙집권화죠.
혁명파 사대부들은 권력을 장악했으니까 중앙을 필두로 지방까지 통제하는 것 중앙집권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몽주를 필두로 하는 온건파는 왕을 저버릴수 없다며 낙향을 합니다. 결국 향촌에 있는거죠.
이 사람들의 목적은 '냅둬, 건드리지마' 즉 중앙집권의 반대인 향촌 자치를 추구합니다
이 두 세력은 15세기 초엔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5세기 말에 훈구파가 등장하며 온건파들이 화를 입게 되는데, 이른바 사화 라고 하죠.
그전에 훈구파들이 중앙집권화를 위해 실시한 노력들을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1-1. 혁명파의 정치
먼저 태조 이성계. 이성계하면 정도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꾀했던 인물입니다.
혁명파 사대부들이 나중에 훈구파가 된다지만, 초기의 혁명파 사대부는 중앙집권화가 아닌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왕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반면, 재상들은 왕이 아니니까 능력이 없으면 단칼에 자를 수 있죠.
따라서 정도전은 능력있는 재상들이 정치를 주도한다면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조선을 만들거라 판단한겁니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이성계에게 '내가 정치를 하겠다. 나같은 재상들이 정치하겠다' 라고한거죠. 약간 거만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이, 한양 도성의 설계, 경복궁 이름 등등 정도전이 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선 건국을 위해 권문세족의 경제력을 무너뜨린 과전법에도 정도전이 기여했습니다.
그는 유학자로써 불교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어느정도냐면 우리를 낮게 김씨, ~~씨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부처를 불씨라고 합니다. 별거 아니라는 의미죠.
그 책이 바로 <불씨잡변> 제목부터 부처가 하는 잡소리. 명백히 유학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성종때 완성되는 경국대전의 틀 <조선경국전>을 편찬합니다.
<조선경국전>에서 정치 편을 더 강화시켜 편찬한 <경제문감> 까지 그 업적이 대단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것은 통해 정도전이 갑작스레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고, 누구를 앞세울 것이고 등등 다 계획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2. 태종, 세종의 정치
아무튼 그렇게 재상 중심의 정치 기틀을 잡나 싶더니 이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 있죠.
재상 중심 정치를 하면 왕의 힘이 약해질거 아닙니까? 이성계 다음부터 왕을 하게 될 태종 이방원이 불안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이대로 가면 내가 권력을 잡지 못하겠구나 싶어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형, 동생을 비롯하여 정도전까지 모두 죽여버리고 왕위를 차지하죠.
어쨋건 왕위를 강화하게 된 셈이죠.
마치 손에 피를 철철 묻혀 왕권을 강화했던 고려의 광종처럼 이방원도 손에 피를 묻힘으로써 중앙집권화를 성공시킵니다.
태종은 재상 정치를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명을 바로 받고 수행하는 6조를 만듭니다.
6조 직계제 라고 하죠.

그리고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권력을 장악할 때 이방원의 사병이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왕이 되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사병을 갖고 있으면 위험하겠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사병을 가지지 못하도록 사병 혁파를 실시합니다.
그 다음 지방에 대한 통제를 위해 양전 사업을 합니다. 쉽게 말해 토지 조사입니다.
토지를 조사함과 함께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남자들에게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를 주죠.
민심도 얻기 위해 지방에서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칠 수 있는 신문고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태종이 중앙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다져놓고 그의 아들 세종이 왕위에 오릅니다.
근데 세종은 우선 재상과 함께 정치를 하겠다며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합니다. 의정부에게 권한을 조금 부여하죠.
태종의 6조 직계제는 왕이 직접 6조에 명을 내리고, 보고도 직접 왕에게 한다면
의정부 서사제는 왕이 의정부를 통해 6조에 명령을 내리고, 보고도 의정부를 통해 받는 형식이었습니다.
또 태종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여버린 탓에 나라에 인재가 부족하자 집현전을 설치하여 인재양성을 꾀하기도 했죠.
훈민정음을 창제한건 말 안해도 다들 아실테구요.
제도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형태는 세종 때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군에는 최윤덕, 6진에는 김종서를 보내 여진족을 정리하며 개척합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왜구들이 들끓고 있던 쓰시마를 정벌하죠.
세종의 아들, 문종도 세종과 버금갈 정도로 인품이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해서 일찍 죽죠. 그러다보니 문종의 아들 단종이 너무 어린겁니다.
그의 삼촌 세조(수양대군)는 단종을 보필하긴 커녕 ‘내가 한번 왕을..’ 라고 하며 계유정난을 일으킵니다.
1-3. 세조와 성종의 정치
근데 계유정난은, 계유년에 난을 깨끗하게 했다 라는 소린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분명 세조가 쿠데타를 일으킨건데 난을 깨끗이 하다니..
세조는 이렇게 말하는거죠. '계유년 당시는 혼란한 시기였다. 그걸 내가 깨끗이 정리했다'
이것은 분명 난이지만, 세조 중심의 역사 용어를 사용한거죠. 이게 바로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중요한 근거죠.
계유정난에 세조와 함께한 대표적 인물은 한명회입니다. 참모의 포지션이었는데 그의 조카, 어린 단종을 유배보내 죽게 만들었죠.
단종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신숙주. 조선 시대 변절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명하죠? '세종 때 집현전에서 열심히 공부하다가 그만 잠들었더니, 그를 본 세종이 기특히 여겨 왕의 도포를 덮어주었다'
조선 열공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런 자가 자신의 아들을 잘 보필하라고 했던 세종의 말을 무시하고 단종을 죽여버린 것이죠.
이렇게 변절자가 있다면, 반대로 끝까지 충성을 다한 성삼문이 있습니다. 죽어서 까지 충절을 지키려고 했죠.
어쨌든 세조는 태종과 굉장히 많이 닮았습니다. 왕권 강화를 추구하죠.
태종을 따라 6조 직계제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신하들과 얘기할 필요가 없다며 세종이 만들었던 집현전을 폐지해버립니다.
그리고 강력한 정치 질서가 필요하겠다며 법전 제작을 시작합니다. 바로 <경국대전>이죠.
동시에 전직, 현직에게 제공했던 녹을 현직에게만 주는 직전법을 시행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왕조는 참 들쭉날쭉합니다. 태종이 다 갈아엎어놓고 세종이 어루만져준 것처럼, 세조가 또 강력한 집권을 실시하자 그 뒤를 잇는 성종은 이거는 아니지~ 하며 또 부드러운 정치를 실시합니다.
이름도 고려의 성종과 비슷한데, 시기와 역할도 꽤 비슷합니다.
고려 광종때 피의 숙청을 한 뒤 성종 시대가 열렸습니다.
조선도 태종과 세조 시대를 거치며 제거될 거 제거되고 성종 시대가 열리게 되는거죠.
성종은 일단 인재들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세조가 없앴던 집현전을 부활시킵니다. 근데 이름을 홍문관으로 바꾸어 부활시킵니다.
그리고 <경국대전>을 완성시킵니다.
또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의례서를 편찬하죠. 왕이 즉위식 할땐 ~~ 해야한다 등의 내용을 적어둔 <국조오례의>
여기까지가 혁명파의 조선 건국부터 훈구파 등장 직전까지의 내용입니다.
따지자면 기준을 나눈 것이 조선 전기는 훈구 / 사림 이므로 25%를 끝냈네요.
조선을 세우면서 기득권이 된 혁명파 사대부들은 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문벌귀족들이 그러다가 무신들의 칼에 맞아 죽게 되는것처럼, 어리석게도 똑같은 모습이 반복됩니다.
훈구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혁명파 사대부들의 이름이 세조가 계유정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새로 명명한 것입니다.
정신 똑바로 박힌 혁명파 사대부들은 태종이 다 숙청하고,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 남아있는 혁명파 사대부들이 훈구파로 명명되어 기득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죠.
그러자 이들을 견제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아까 사대부 중에서도 온건파 사대부들이 지방에 들어가 향촌자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었죠?
이 온건파 사대부들이 지방에서 힘을 키워 사족이 됩니다. 이후에 사림들이 될 세력이죠.
지방에서 서서히 3사를 장악하면서 중앙으로 올라옵니다.
3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인데 고려의 3사와 구분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선의 3사는 언론 기관입니다. 이 언론 기관을 장악하고 난 뒤 사림파는 훈구파들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훈구파 세력이 무너진게 아니고 살아있는 권력이죠?
열받은 훈구파는 복수를 시작합니다. 사림들이 화를 입었다 하여 ‘사화’라고 하죠.
중요한건 사림들이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것이죠. 역사는 항상 건강한 세력이 끝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정의는 승리하고, 부정과 부패는 오래 가지 못한단 소리죠.
사화는 승리로의 과정일 뿐, 근데 그 사화가 좀 심하긴 했습니다.
크게 4대 사화가 있는데 '무갑기을' 전부 ~~년에 입은 사화를 뜻합니다.
1-4. 사화
- 무오사화
무오년의 왕은 연산군이었습니다. 이때 사림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김종직이 “조 의제문”을 썻습니다.
그리고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일손이 “조 의제문”을 사초에 실으려고 하죠.
사초란 조선왕조실록의 기본 바탕 내용이 되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조의제문이 어떤 내용이냐, 혹시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항우는 초나라의 왕, 황제죠. 황제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조카 의제를 죽인 인물입니다.
이를 보고 김종직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쓴거죠.
근데 이거 어디서 본 내용 아닌가요? 어린 단종을 두고 계유정난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조의 이야기죠.
즉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를 통해 삼촌이 조카를 죽인 것을 비판하는 글로 세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겁니다.
이걸 빌미로 훈구파들은 사림이 왕실을 능멸했다며 왕을 통해 사림들을 숙청했습니다.
- 갑자사화
갑자사화는 무오사화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역시 연산군 때인데, 이거는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눈이 돌아간 사건입니다.
'우리 엄마 죽인 사람 다 나와' 하면서 가차없이 다 죽입니다.
훈구와 사림할 것 없이 굉장히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죠.
연산군이 이렇게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니까 결국 중종반정이 일어나죠.
- 기묘사화
중종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올라온 뒤 일어난 사화가 기묘사화입니다.
중종 시기에 사림들이 굉장히 많이 등용됩니다. 대표적인 사림이 조광조입니다.
조광조라 한다면 조선의 3대 개혁가에 손꼽히는 인물이죠. (조광조, 김유, 흥선대원군)
근데 반정은 성공했으니까 반정이라 하지, 실패하면 역모입니다.
감히 왕을 바꾸려고 한건데 실패하면 3대가 멸하죠. 이런 리스크를 지고 반정에 가담해준 사람들은 훈장을 받습니다.
조광조가 이후 훈장 받은 사람들 목록을 보니까 실제로 반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슬쩍 자기 이름을 올린 사람이 많더라는 겁니다.
이 거짓 훈장을 받은 사람들을 리스트에서 다 제거하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위훈 삭제’
근데 거짓 훈장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훈구파입니다. 그리고 훈구는 아직까지도 기득권층이었죠
여기서 훈구파의 심기를 한 번 건드리고, 또 사림이 주장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건 믿지 않았기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소격서를 폐지하라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림들을 대거 등용하기 위해 현량과를 실시할 것을 주장합니다.
훈구들은 이제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일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혹시 이런거 본적 있으신가요?

훈구파들은 잎사귀에 주초위왕을 몰래 적어놓고, 우연인 척 발견합니다.
주초를 합치면 조가 됩니다. 즉 조 씨가 왕이 된다 라는 잎사귀가 발견된거죠.
이걸 빌미로 훈구파는 중종에게 ‘ 전하, 이것은 역모입니다. 조광조를 죽여야합니다 ’ 라며 부추겼고 결국 조광조들 비롯한 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모습입니다.
- 을사사화
마지막 사화는 바로 을사사화입니다
명종 때 일어난 사화인데, 이 사화는 사림과 훈구가 아니라 외척 세력의 싸움입니다.
윤임으로 대표되는 대윤 세력과 윤원형으로 대표되는 소윤 세력의 싸움이었죠.
대윤 소윤과의 싸움이지만 대립 과정 속에서 사림도 피해를 입었다 하여 을사사화입니다.
근데 이렇게 중앙에서 싸우게 되면 통일신라의 말기 모습처럼 지방에서 힘을 키우겠죠?
사림들도 지방에서 유향소, 향약, 서원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여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임꺽정 아시나요? 임꺽정도 바로 명종, 혼란했던 시기에 변란을 일으킨 인물이죠.
아무튼 이렇게 힘을 키운 사림들이 결국엔16세기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역사의 주도 세력이 바뀐거죠. 아무리 억압당해도 정의는 승리하는 모습.
그런데 이 사림들은 다수의 세력입니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세력이 소수란 소리죠
왜냐, 기본적으로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니까요.
건국 초기 다수가 향촌으로 낙향하는 사림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근데 이제 다수의 세력인 사림이 권력을 차지하게 된거죠?
관직 수는 정해져 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겁니다.
이러면 결국 서로 또 무리지어 나뉘게 되겠죠. 바로 붕당 정치입니다.
'벗 붕' 자를 써서 서로 뜻이 맞는 자들끼리 뭉쳐다녔습니다.
사림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붕당이 형성된 시점이 바로 선조때입니다.
선조하면 임진왜란 떠오르시죠? 바로 그 선조입니다.
2. 붕당 정치의 시작
첫 번째로 동인당과 서인당으로 붕당이 나뉩니다. 근데 왜 이름이 동인, 서인당일까요?
대단한 이유는 없고 동인당을 이끌고 있던 인물이 김효원인데 김효원이 살고 있던 집이 서울에서 동쪽
서인당을 이끌던 심의겸의 집이 서울에서 서쪽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단순하죠?
두 당으로 나눠지는 결정적 계기는 이조전랑과 척신청산입니다.
이조전랑은 관직의 이름인데, 인사권을 가진 아주 중요한 관직이었습니다.
이 이조전랑을 차지하려는 김효원과 심의겸들을 두고 사람들이 줄타듯 갈라져 동,서인이 된거죠
그리고 척신청산, 앞에 을사사화에서 외척 얘기가 나왔었죠?
외척이란 왕의 외가 쪽 세력을 말하는 건데, 이 척신들의 잔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두고 또 동인과 서인이 나뉩니다.
확실하게 뿌리뽑자는 동인 그리고 살살 하자는 서인.
어쨌든 이렇게 출발한 붕당의 역사 계보를 조금 자세히 알아봅시다.
말로 하면 이름이 많아 복잡하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 인물도도 첨가해드릴테니 편하게 읽고 지나가세요.
다 외울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저 사림들의 분화 과정만 알아보시면 됩니다.
서인의 시작은 건국 초기 온건 사대부인 정몽주의 향촌 낙향부터 길재, 김숙자 등으로 이어지다가 여러분이 익히 잘 아시는 김종직이 등장합니다.
아까 말했죠? ‘조 의제문’의 저자이자 무오서화의 원인.
김종직 이후로 정여창, 김굉필 김일손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중 김종직과 김일손을 포함한 사림들이 무오사화, 김굉필은 갑자사화에서 큰 피해를 입습니다.
여기까지 표현해보자면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김굉필 뒤로 이언적, 서경덕, 조광조, 김안국이 등장합니다.
조광조가 훈구파의 권력에 도전하자 나뭇잎 주작 사건, 기묘사화가 일어났었죠.
그 다음 사림 세대는 조식, 이황, 율곡 이이, 성혼입니다. 여기까지 다시 정리해보면,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볼 때 조식, 이황, 서경덕 계열들을 우리는 동인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이, 성혼을 묶어서 서인당이라 하구요.
그런데 이 동인당과 서인당이 또 나뉩니다. 동인당은 북인과 남인, 서인당은 노론과 소론.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나뉠 때 조식과 서경덕 계열이 북인쪽으로 연결되고, 이황 계열이 남인 쪽으로 연결 될겁니다.
서인당도 마찬가지로 이이가 노론, 성혼이 소론쪽으로 연결됩니다. 최종적으로 이런 형태죠.

복잡하죠?
전혀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고 정몽주로부터 시작한 사림이 어떤 흐름을 타고 동인과 서인, 그리고 북인 남인 / 노론 소론으로 나뉘는지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절대 이름 외우실 필요 없구요.
분화 과정은 또 나중에 자세히 알려드릴거니 맛보기로 관계도만 눈에 익혀두시면 되겠습니다.
15세기 역사 주도 세력인 훈구(개혁파 사대부)가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새로운 세력 사림이 권력을 장악하고 분화하는 모습을 통해 조선 전기 정치를 쭉 한번 살펴봤습니다.
앞으로의 정치에선 붕당으로 나뉘어 서로 어떻게 새롭고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토론하는 모습이 나타날겁니다.
토론 정치가 굉장히 익숙해지실거에요.
조선의 여러 조직들도 첫 글에서 정치와 함께 작성하려했지만, 학습 분량을 조절해야하기에..
다음 글에서 소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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