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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고려의 문화 1 (경제, 사회, 교육)

[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고려의 역사는 모두 끝냈고, 이제 신라처럼 문화에 대해 알아볼 건데요.

 

사실은 그중에서도 고려의 경제와 사회 부분은 한능검에서 잘 출제되는 파트가 아닙니다.

 

운이 좋으면 한 문제정도 나오죠.

 

오히려 정치와 문화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출제됩니다.

 

그래도 그만큼 경제와 사회에서는 더 배울 내용보다 배웠던 고려의 흐름에서 살만 붙이면 완성이라 어렵지 않습니다.

 

얼른 끝내고 고려의 문화재로 넘어갈 테니 조금만 집중해 주세요.

 

 

1. 고려의 경제

 

우선은 경제 하면 세금과 토지 제도가 있겠죠.

 

토지에는 두 가지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땅을 소유하는 권리와 그 땅에서 세금을 걷는 권리.

 

소유권과 수조권입니다.

 

수조권하면 기억나는 고려의 제도가 있죠? 개국 공신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역분전. 그리고 경종때 시정전시과가 등장했죠.

 

역분전과 시정전시과 사이에는 광종이 있었습니다.

 

사실 역분전은 당시 왕권이 약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광종이 피의 숙청을 통해 왕권을 강화시킨 뒤로부터 중앙집권화, 즉 왕을 중심으로 관리를 서열화하기 시작했죠. 그 서열에 맞게 전지와 시지를 나누어주는 것이 시정전시과였습니다.

 

복습 다했네요.

 

시정전시과는 지금의 공무원처럼 퇴직 후에도 연금처럼 계속 지급해 주었죠.목종은 이 시정전시과를 개정해서, 개정 전시과를 실시하는데 내용이 똑같습니다.

 

여전히 관료들의 직급에 따라 전지와 시지를 나누어줍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정전시과에는 집안의 공을 보고 조금 더 주는 역분전의 개념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개정전시과는 아예 전지와 시지만을 지급하는, 조금 더 왕권이 강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종은 이 개정전시과를 또 바꿔서 경정 전시과를 실시합니다.

 

이전에는 전, 현직에게 모두 지급했다면 경정 전시과는 현직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했습니다.

 

여태까지 전 현직에게 모두 주다 보니 토지가 부족해진 탓이죠.

 

 

 

이제 소유권과 관련된 토지 제도를 볼까요?

 

고대 성덕왕 때 백성들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보장해 준 제도, 정전이 기억나실진 모르겠지만 고려 시대에도 똑같은게 있습니다.

 

바로 민전인데, 이 민전은 조선시대까지 쭉 사용하죠. 백성 민 자를 써서 민전입니다.

 

이 소유를 인정해 주는 민전과 수조권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입니다.

 

토지를 가진 백성은 땅에 대한 세금을 내야겠죠?

 

그 세금은 전시과를 통해 해당 땅에 대한 수조권을 부여받은 관리에게 냅니다. 즉 민전 위에 전시과가 설정되는 것이죠.

 

토지 제도는 벌써 끝, 이제 세금 봅시다

 

 

 

신라에서 세금을 걷기 위해 작성했던 장부 이름 기억나시나요? '민정 문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와서는 민정 문서가 양안과 호적으로 나눠진다고 설명했었죠.

 

양안은 말 그대로 토지대장입니다. 토지세를 거둘 수 있는 근거 자료로 활용됩니다.

 

그럼 호적은 무엇을 세금으로 걷는데 필요한 장부일까요?  ‘역’. 군대로 잡아가야죠.

 

조세와 역이 나왔으면 특산물과 관련된 공납도 있겠네요. 조세, 공납, 역은 어느 시대나 세금으로서 똑같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경제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토지 제도와 수취제도를 끝냈습니다.

 

 

이제 백성들의 경제활동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는지만 보면 경제파트는 벌써 끝입니다.

 

농업에선 모판에 모를 심고 일정 정도 자란 모를 옮겨 심는 이양법이 고려말에 시작되어 조선에 가서는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이릅니다. <농상집요>라는 서도 있었죠.

 

이건 논이고, 밭에서는 2년에 3가지 작물을 키우는 2년 3작의 윤작법을 실시했습니다.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온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한편 상업 쪽에선 벽란도 항구를 이용하여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신라의 울산항이 경주와 가까워서 채택된 것처럼, 벽란도 항구도 개경과 아주 가까워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코리아도 이때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부르면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리고 무역을 하려면 화폐가 있었겠죠? 은병과 활구가 화폐로써 사용되었습니다.

 

고려 내에서는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는 해동통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동전들을 관리하는 관청도 따로 ‘주전도감’이라고 있었죠.

 

하지만 중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전국적 화폐 유통은 결국 실패합니다.

 

여전히 쌀, 옷감 등의 현물로만 거래하는 모습이 압도적이었죠.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화폐가 유통된 시기는 조선 후기, 상평통보가 등장함과 함께입니다.

 

그 외에도 상행위를 관리 감독하는 경시서, 물가를 조절하는 상평창이 있습니다. 

 

 

 

2. 고려의 사회

 

지배층들에 대해선 이미 닳도록 배웠죠? 호족 – 귀족 – 문벌귀족 – 권문세족 – 신진사대부, 신흥무인세력

 

근데 이들만이 지배층은 아니고, 지배층에는 중류층도 있습니다. 바로 하급 관리들이죠. 향리도 중류층에 속합니다.

 

그다음이 양민으로 백정, 향 부곡 소민 등이 있는데, 이때는 백정이 일반 농민이었습니다.

 

저희가 주로 아는 백정은 소 잡고, 돼지 잡고 하는 천민이죠? 이건 조선의 이야기입니다.

 

고려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던 게 바로 백정이었죠. 향 부곡 소민들은 차별을 받으며 수공업에 종사한다고 말씀드렸고요.

 

마지막 천민은 노비로 그들은 일천즉천의 규율을 따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쪽이 천민이면 바로 천민이 되는 거죠.

 

노비들은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상속과 증여의 대상으로서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았죠.

 

고려 사회의 특이한 점은 균분상속 때문에 가정 내 여성 지위가 높았다는 점 정도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또 고려는 불교가 압도적이라, 향도라는 조직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모여서 향을 피우는 활동을 했습니다. 불교 신앙 조직에서 출발한 향도는 고려 후기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냥 마을 공동 조직이 되어갔습니다. 

 

제도에서는 먼저 구휼제도, 태조 왕건 때 흑창이라는 제도가 있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의창으로 바뀌게 되는데 의창과 함께 제위보도 운영합니다. 제위보는 지금으로 치면 유니세프 같은 느낌입니다. 기금을 모아 어려운 백성들에게 사용하는 기구였습니다.

 

또 아프면 병원 가야겠죠. 병원과 같은 대비원, 그리고 약국으로 혜민국, 시민들을 구제해 주는 구제도감, 구급도감도 있었습니다. 

 

고려의 경제와 사회는 여기서 줄이고, 시험 출제의 비중이 높은 교육과 불교에 대해 알아봅시다.

 

 

3. 고려의 교육

 

문화는 각 지배층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신라에서 왕실이 불교를 공인한 것처럼요.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족들은 일단 나라를 세운 이들이니 태초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비사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종은 국가에서 학습을 주도하는 학교를 세우죠.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중앙에 국자감을 세우고,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교 경전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유교 공부를 시키고, 광종이 쌍기의 건의로 시행한 과거제를 통해 관리를 등용하죠.

 

고려는 불교의 나라라, 과거 중에서는 승려들이 보는 승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과도 있는 마당에 특이하게도 무과는 없었습니다.

 

이걸 보면 무신정변이 생각나죠? 

 

'무슨 시험도 없고, 완전 무신 차별하네'라고 생각 하실텐데, 그게 아니라 고려는 여러 번 말했듯 외침이 정말 끊임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죠. 전쟁터가 곧 시험장이었습니다. 공을 세우면 장군이 되는 거죠.

 

이렇게 해서 국가 주도의 교육이 성행하는데, 지금의 우리가 사교육을 실시하는 것처럼 그때도 사립학교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중앙의 국자감보다 사립학교의 과거 합격률이 더 높아 명문이라는 수식어도 붙었죠.

 

그래서 다들 국자감보다 사학 12도로 들어가려 노력합니다.

 

이 사학 12도는 문벌귀족 때 아주 성행하게 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최충의 9재 학당.

 

웃기게도 추석 특강, 여름방학 특강, 그리고 기숙학원도 있었습니다. 절에서 합숙을 하고 각촉부시도 보며 지냈죠.

 

각촉부시란 초에 금을 그어놓고 시간 안에 글을 빨리 짓는 모의고사와 같은 개념입니다.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명칭만 다르지 현재와 똑같습니다. 지금 우리도 제한된 시간 안에 푸는 연습 많이 하잖아요.

 

예전이 각촉부시였다면 지금은 학원에서 파이널 테스트 이런 것들을 하죠.

 

이전에는 신분제에 의해 전혀 없었던 모습이지만, 광종이 과거제를 시행하면서 신분 상승의 욕망을 키우고, 이로 인해 사교육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죠.

 

어찌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광종이 시작했다라고 봐도 되겠네요.

 

 

 

아무튼 이렇게 사학이 발달하니까 국가에서도 지지 않으려고 대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학 12도에 맞서는 관학 진흥책이 나옵니다. 지금처럼 장학금도 주고 전문 7재라 하여 좋은 선생님들을 모셔서 강의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학 12도가 워낙 명문으로 소문이 나서 절대적으로 밀립니다.

 

그런데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나잖아요?

 

무신들이 문신들을 대거 숙청해버리고 나니 자연스레 유학의 유행이 상당히 위축됩니다.

 

그러다가 고려 말, 원 간섭기에 들어서면 원 간섭기의 실세인 권문세족들에 의해 불교가 다시 성행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안향이라는 사람이 원에서 성리학을 들여왔습니다. 이 성리학을 수용했던 인물들이 바로 신진사대부고요.

 

정몽주, 정도전 등 조선 건국에 협력한 이들도 신진사대부죠.

 

 

 

4. 서와 불교

 

역사서들의 편찬 배경, 그리고 관련된 재미난 일화들도 다 알려드리고 싶지만, 설명해야 할게 태산이라 역사서는 이름만 알려드리는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김부식 <삼국사기>  일연 <삼국유사>   이승휴 <제왕운기>   이규보 <동명왕편>   각훈 <해동고승전>

 

이중에서도 삼국사기와 심국유사는 이름이 비슷해서 자주 헷갈리실 텐데, 삼국유사의 ‘유’가 버릴 유입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분량상 적지 못한, 즉 버려진 민간설화 등을 담은 책입니다. 이제 구분하시겠죠?

 

 

불교도 눈에 익혀만 두시고 넘어갑시다. 왜냐하면 고려가 불교의 국가인 만큼,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불교에 대해 설명드릴 거라서 맛보기 느낌으로 이름 정도만 알아둡시다.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승려, 균여의 <보현십원가>, 문벌귀족 시대에는 의천의 천태종

 

무신 시대에는 지눌의 조계종, 수선결사, 혜심의 유불일치설, 요세의 법화신앙, 백련결사

 

갑자기 생소한 단어들이 많은데, 어려울것 없습니다. 이 단어들이 보이면 고려구나! 하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번외로 풍수지리에는 대표적으로 묘청이 있습니다. 12세기 고려에 금이 사대를 요구하자 금 정벌을 주장한 서경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죠.

 

풍수지리는 메이저 종교들에 비해 겉도는 느낌이 있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선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성계가 풍수지리의 대가 무학대사를 데리고 다니며 좋은 땅을 찾아 수도를 옮긴 곳이 바로 조선의 수도 한양이죠.

 

 

 

이제  다음 글에서 고려도 완전히 끝이 나겠네요.

 

신라처럼 불상, 불탑, 인쇄물, 건축, 과학기술 등등 잡다하게 알아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초기 호족 문벌귀족
유학 성종(최승로) - 국자감, 향교 사학12도 - 최충의 9재학당
관학 진흥책 - 양현고, 전문 7재
  삼국사기 - 김부식
불교 균여<보원십원가>
태조 훈요 10조
최승로 - 연등회 축약, 팔관회 폐지
천태종 - 의천
풍수지리 서경길지설 서경 천도 운동 - 묘청

-1170 무신정변-

후기 무신 권문세족
유학 유학 위축 안향의 성리학 소개 - 신진사대부 수용
<해동고승전> - 각훈
<동명왕편> - 이규보
일연 <삼국유사>
불교 조계종, 수선결사 - 지눌
유불일치설 - 혜심
법화신앙, 백련결사 - 요세
 
풍수지리   한양 천도(무천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