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장장 9개의 글을 통해 고대를 끝마쳤다면 이제 중세의 한국사로 떠날 시간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고려부터를 중세로 구분하는 것은 인간 자유의 확장이 크게 실현된 시기라 그렇습니다. 고대에 비해 좀 더 열려있는 거죠.
과거에는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도 낮은 신분 사람들의 이야기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최치원의 시무10여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처럼요.
그러나 중세로 분류한 만큼 고려부턴 다릅니다.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받아들여지죠.
0. 꼭 알아야하는 고려의 흐름
본격적인 고려의 역사 시작에 앞서, 가장 큰 덩어리들만 기억해 두고 넘어갑시다.
가장 큰 덩이는 무신정변입니다.
이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고려의 전기와 후기로 나누거든요.
고려는 918 - 1392년의 약 5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마침 딱 나누기 좋게 그 중간인 1170년에 무신정변이 일어납니다.
근데 고려 전기를 또 두 시기로 나눌 수가 있어요.
고려의 건국 직후의 초기, 그 이후 무신정변까지를 중기.
절대적인 구분의 지표는 아니지만, 이렇게 나누고 가시면 훨씬 수월하다는 점!
고려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건 당시의 역사 주도 세력이 누구였냐입니다.
918 고려를 건국한 세력이 누구죠? 바로 호족입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했었죠. 그러니 호족과 6두품들이 고려 초기의 주도 세력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면서 지배층들 중, 중앙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점점 기득권 세력으로 문벌귀족화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 중앙말고 지방에 사는 지배층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지방이라고 해서 힘이 약해진 건 아니고, 그 지역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향리가 됐습니다.
정리하자면 고려를 건국한 호족과 6두품들이 시간이 지나며 중앙에선 문벌귀족으로, 지방에선 향리로 성장한 거죠.
특히 문벌귀족이 사회를 이끄는 시대를 중기로 봅니다.
그런데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내려놓기 힘들죠. 결국 문벌귀족들은 고려 중기를 지나면서 욕망과 욕심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다 무신들의 칼에 맞아 무너지게 됩니다. 아까 말한 1170 무신정변이죠.
여기서부터 고려 후기라고 보는 겁니다.
무신이 집권하고 난 뒤, 고려에는 몽골이 끊임없이 침공합니다. 결국엔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원 간섭기가 시작됩니다.
이제 원 간섭기에는 어떤 세력이 고려를 주도했느냐, 원의 영향이 막강한 원 간섭기니 당연히 원에 빌붙어서 성장한 세력이겠죠
그들을 바로 권문세족이라 합니다.
그런데 고려의 후기라고 했으니, 역시 나라의 마지막 모습들 하면 떠오르는게 뭡니까? 부정과 부패가 심해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거죠. 통일신라 말기에 부정 부패가 심해지자 지방의 호족들이 등장한 것처럼요.
고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문세족들이 원에 붙어서 성장하고, 각종 부정 부패를 일삼사 그들에게 저항하며 성장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아까 고려를 세운 6두품, 호족들 중에서 지방에서 성장한 향리 기억나시죠?
그 향리들이 모두 권문세족에 저항하는 세력이 된 건 아니고, 향리들 중에서 일부가 신진사대부로 성장하게 됩니다.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장착한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학자였습니다.
바로 이 신진사대부에 의해서 권문세족이 무너지고,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이 손을 잡으며 결국 1392년 조선을 세우게 됩니다.
아유 뭐가 많죠? 줄여보면
초기는 호족들에 의해서 고려가 나라를 세워지고
중기는 호족들이 중앙에서 문벌귀족화, 지방에선 향리화되는 모습
그리고 문벌귀족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지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서 정권을 장악, 이때부터 후기.
하지만 후기의 무신정권은 원의 지속적인 침략에 무너지고 그런 원에게 빌붙는 권문세족의 등장.
마찬가지로 권문세족의 부정 부패가 심해지자 향리 출신의 신진사대부가 등장
결국 권문세족은 무너지고 신진사대부가 신흥무인세력과 힘을 합쳐 조선 건국.
단 6문장에 고려사를 압축해보았습니다. 이 약도만 가지고 계시면 고려사에선 어려움이 없을거에요.
자 이제 고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셨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1. 고려 초기
고려의 통일 이전, 실질적인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를 끝으로 마침내 두 번째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늘 그렇듯 통일을 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있죠. 바로 민심을 얻는 겁니다. 특히나 통일 직전의 신라를 보면, 원종과 애노의 난이 일어나는 등 백성들의 불만이 컸거든요.
민생안정을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요? 이건 외운다기보단 상식에 가깝습니다.
백성들의 세금을 깎아줘야죠. 태조는 그것도 아주 파격적으로 진행합니다.
무려 세금의 90%를 절감.
그리고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는 제도, 이전의 고국천왕이 실시한 진대법처럼 흑창을 열게 됩니다.
이 '창'이라는 것이 나중에 가선 의창 상평창 등의 구휼 기구로 연결이 되죠.
그리고 고려는 호족들이 세운 만큼, 호족 연합 정권으로 초기의 왕권이 약했습니다. 왕건도 호족인데 뭐가 문제냐고요?
다른 호족들이 자신도 건국에 기여했음을 들먹이며, 왕이 주도적인 정치를 못하게 하려 하니까 문제죠.
그래서 태조왕은 호족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다스립니다.
우선 호족들과 결혼하여, 왕 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제도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호족들은 개국공신이잖아요?
그래서 토지를 책정된 호족 개인의 개국 기여도에 따라 차등해서 나눠주는데 이를 역분전이라고 합니다.
역할에 따라서 나눠주는 토지다~ 해서 역분전인 거죠.
당근을 줬으면 채찍도 휘둘러야 합니다. 태조왕은 채찍책으로서 사심관 제도를 시행합니다.
이 사심관 제도는 당시 호족들의 연대책임의식을 활성화시키기 위함이었는데요. 각 지역의 호족 중에서 사심관을 두어 그 지역에 대해 책임을 물었죠.
특히 신라를 바쳤던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경주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사심관인 경순왕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그리고 호족의 아들을 개경에 데려와 살게 하는 기인제도가 있겠습니다. 통일신라에도 이런 인질제가 있었죠? 그땐 상수리제도였습니다.
태조는 국내로는 호족을 쥐락펴락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영토 확장을 위해 북진정책을 펼칩니다.
뜬금없이 왜 북진을 하느냐, 우선 고려는 어느 나라를 계승한 나라죠?
네 고구려죠.
그럼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는요?
네 여기도 고구려입니다.
그럼 하나 더, 발해가 망하고 발해의 유민들이 온 곳은 어디죠?
고려죠? 자 이제 뭔가 연결되시나요?
영토를 북쪽으로 쭉쭉 올리는 과정에서 서경을 중요시한 걸 보아 고려의 고구려 계승 정신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서경은 고구려의 수도였습니다)
태조가 한 일이 굉장히 많죠?
태조는 고려를 세운 왕으로써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었나 봅니다. 그리하여 남긴 것이 <정계> <계백료서> <훈요 10조>입니다.
정계는 말 그대로 정치할 때 경계해야 하고, 신중하게 해야 할 내용을 적은 것이고 계백료서는 관리들이 해야 될 것들, 말아야 될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훈요10조는 사성제도에서 비롯된 건데, 호족들을 달래기 위해 여기저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다 보니 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부인만 해도 29명이니 말 다했죠.
그래서 태조는 아들들이 서로 왕위를 위해 싸울까 봐 훈요 10조를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여기까지 태조 왕건이 고려의 기틀을 잡은 모습. 그런데 태조가 걱정했던 왕위 다툼은 현실이 됩니다. 훈요10조 까지 남겼는데 소용이 없었네요.
원래 왕이 되겠다는 후보가 많다면, 다툼은 더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왕규의 난이 있겠네요.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올라왔던 또 다른 왕이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광종입니다.
1-1. 고려 초기의 왕권 강화 - 광종
광종은 아주 중요한데, 고려 시대의 왕권 강화라 하면 광종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물론 왕건도 왕권 강화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실질적으로 왕권 강화에 가장 큰 진전을 준 왕은 광종이거든요.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광종은 아주 무서운 왕입니다. 곧 그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광종은 영리하게도 맨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랬더니 그 밑에 있던 호족들이 안심하고 광종을 내버려둡니다.
원래 호족들은 여차하면 왕을 죽이고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을 왕위에 앉혔거든요.
그렇게 광종은 7년이나 가만히 앉아있기만 합니다. 물론 대내외적으로 한 것이 없는 것이지 아마도 그 사이에 호족들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을 계속 해왔겠죠.
그러다가 광종은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뗍니다. 본격적인 호족잡기에 들어가죠
그 첫 시작은 노비안검법 입니다. 국가가 조사를 해서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돌려놓는 법인데 노비는 엄연히 호족의 사유재산입니다.
만약 노비가 줄어든다면 호족의 힘은 약해지고, 양인이 된 노비는 왕의 백성이 됨으로써 왕에게 세금을 내게 됩니다.
노비는 호족의 군사적 자원이었어요. 그러니 노비를 줄임으로써 호족의 군사력을 견제할 수 있는 거죠. 이거 어디서 많이 봤습니다.
신문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했던 거 기억나시죠?
즉 호족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소린데, 과연 호족들이 가만있을까요?
네 가만히 있습니다.
엥?
이때만 해도 호족들이 긴가민가했나 봅니다. 7년 동안 배나 긁으면서 아무 일도 안 하던 광종이니까요. 이게 자신들의 최후로 다가가는 첫걸음인 줄 꿈에도 모른 것이죠. 광종의 매서운 빌드업..
거기에 더해서 영리한 광종은 호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 재정이 어려우니까 양인이 많아져서 세금을 내야 내가 너희 호족들에게 콩고물을 줄 거 아니야 ‘
그렇게 아무 의심 없이 호족들의 안심 속에서 노비안검법이 시행됩니다.
그런데 광종은 노비안검법이 시행되자마자 바로 과거제까지 때립니다.
노비안검법은 일종의 미끼였죠. 호족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슬며시 보고, 잠잠하니까 그대로 쭉쭉 나아갑니다.
과거제를 실시한다는 건 호족들한테 시험을 보라는 건데, 이 말인 즉슨
’너희들은 개국공신이라 여태 역분전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았지만 이젠 아니야, 이제부턴 실력에 의해서 관리를 등용할 거야‘
한 마디로 호족들을 퇴출하겠다는 거죠. 호족들은 이번에도 가만히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정도로 멍청하진 않았군요.
만만하게 봤던 광종이 꿈틀대자 호족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러고는 우리 개국공신 집안인 거 몰라? 이게 뭐 하는 거야? 하며 들고일어납니다.
그런데 빌드업의 신 광종은 아마 이 반응까지 노린 것 같습니다. 광종의 최종적 목표는 호족 숙청이었거든요.
스쳐지나가는 명언, "정치에는 명분이 필요한 법"
호족들이 들고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광종은 칼춤을 춥니다.
그런데 여러분, 광종은 왜 과거제를 먼저 시행하지 않았을까요?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광종에 대해 알아보다가 여기서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노비안검법을 먼저 실시한 것은 철저히 계산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노비안검법의 시행 이후, 호족들은 노비가 빠져 군사력이 약해지죠.
그리고 그 직후에 과거제를 실시하여 호족들의 반발을 유도합니다. 거기에 낚인 호족들은 막상 들고 일어나보니 웬걸, 군사력이 약해진 호족들은 군대의 적수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죠. 군사력이 약화되었던 호족들은 그저 숙청당할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실행한 광종, 상당히 치밀하고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만약 이런 빌드업 없이 광종이 즉위하자마자 호족을 제거하려 했다면 광종이 먼저 호족에게 칼 맞아 죽었을 겁니다. 7년이라는 인고의 시간과 철저한 계획이 있어서 성공한 것이죠.
그렇게 호족들을 손에 피묻혀가며 깡그리 숙청한 광종은 공복도 제정합니다.
동시에 스스로를 황제라 하며 광덕 또는 준풍이라는 연호를 씁니다.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 것을 칭제건원이라 합니다.
광종의 왕권 강화 프로젝트가 완벽히 성공함에 따라 고려는 다시 멀쩡해집니다. 이후 경종에 이르러 시정전시과가 시행됩니다.
왕권이 강화되기 이전에는 호족들에게 개국 기여도에 따라 토지를 나눠주는 역분전을 시행하고 있었죠. 그런데 왕권이 강화된 이후로는 과거제를 통해 뽑은 관리들에게 딱 일한 만큼만 월급을 주기 시작합니다.
즉 경종의 시정전시과 시행은 앞에서 광종이 호족을 싹 숙청해 놨기에 가능했다는 점.
시정전시과는 전지와 시지로 두 가지를 지급했는데 전지는 토지, 시지는 임야입니다 (앞에 시정은 그냥 경종에 처음으로 정했다 하여 붙은겁니다.)
2. 고려의 행정 제도
이렇게 호족에 의해 잠깐 휘청이던 고려를 되돌려놓자 성왕이 등장합니다.
성왕은 고려의 안정화를 위해 가장 힘썼던 왕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유학자 최승로의 시무 28조도 이때 받아들이죠, 기억나시죠? 신라말 최치원의 후손.
시무 28조 중에서도 지방에 12목을 파견하라는 건의와 중앙에서 2성 6부를 정비하라는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이 조직도에 나오는 직명은 반드시 알아두시고 가야 합니다. 정말 자주 나오거든요.
마찬가지로 9주 5소경 등을 금방 넘어간 이유는.. 그저 그보다 더 깊은 내용이 출제되는건 매우 가끔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2성 중 하나인 중서문하성은 2품 이상의 높은 관리로 구성된 재신, 그리고 3품 이하의 관리들로 구성된 낭사로 나뉩니다.
재신과 낭사는 각각 심의와 언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서문하성의 최고 책임자를 문하시중라고 합니다
상서성은 보시는 것처럼 그 밑에 6부가 붙습니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그리고 얘네들을 일컫는 게 2성 6부죠.
그런데 2성 6부 말고도 뭔가 많죠? 제외된 기구들은 절대 그 비중이 낮아서 명칭에 제외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왜 고려의 행정 제도를 2성 6부라고 부르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추원은 중서문하성과 마찬가지로 품에 의해 나뉩니다. 2품 이상의 관리들로 구성된 추밀, 3품 관리가 모인 승선으로요.
추밀은 국가의 중요한 기밀문서, 즉 군국기무를 담당했고 승선은 비서기관입니다. 지금으로 보면 각자 국가정보원, 대통령비서실 같은 느낌이죠.
참고로 꿀팁인데, 승선과 같이 기관에 ’ 승‘ 들어가면 모두 비서기관입니다. 예로 조선의 승정원이 있습니다.
어사대는 말 안 해도 아시죠? 암행어사 출두요~ 들어보셨잖아요. 바로 감찰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근데 삼사는 조금 집중하셔야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삼사가 있어서 헷갈리기 쉽거든요. 이름은 같지만 서로 기능이 다릅니다.
고려의 삼사는 회계를 담당하고 조선의 삼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이라 하여 언론기능을 담당합니다.
꼭 구분을 해주시고, 아까 중서문하성과 중추원에는 고위관료로 구성된 팀이 있다 했었죠.
심의를 담당하는 재신과 군국기무를 담당하는 추밀. 이들이 만나서 하는 회의가 재추회의입니다. 이름 쉽죠? 단순히 재신과 추밀에서 따온 겁니다.
이 재추회의는 주로 문관 위주의 회의체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무관 위주의 회의도 당연히 있습니다. 이거를 중방이라고 하는데 중방은 아직 힘이 없습니다. 나중에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켰던 시점이 되어서야 무신들이 쎄져서 제대로 기능하게 됩니다.
아무튼 돌아가서 재추회의에는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이 있는데요, 먼저 도병마사 보겠습니다.
이것도 어원이 간단해요. 병마사를 지도하고 관리한다 해서 도병마사입니다. 병마사 적들과 만나는 국경 지역을 관리 감독하는 지방관입니다.

저기 천리장성 부분 보이시죠? 국경입니다. (이 천리장성은 예전 연개소문이 지은게 아니라, 새로 지은건데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국경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들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회의기구가 도병마사인 거죠.
그런데 왜 다른 곳 말고 국경 지역에 있는 지방관을 감독하는 특별한 모습을 보였을까요?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국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도병마사는 국방회의와도 같죠.
고려는 특히나 끊임없는 외침이 있던 나라여서 당연히 회의기구가 필요했던 겁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도병마사는 원래는 임시 기구로 만들어졌습니다. 외적이 쳐들어오니까 군국기무를 담당하는 추밀과, 회의가 주 업무인 재신들이 부랴부랴 모여서 회의를 한 겁니다.
그런데 외침이 너무 자주 일어나니깐 이 도병마사가 나중에는 상설기구화 됩니다. 고려 후기에 가서 도평의사사로 이름이 바뀌기도 합니다.
이 흐름과 아주 똑같은 조선의 비변사도 있죠. 비변사 또한 처음엔 임시로 만들었다가 왜가 자꾸 난을 일으켜서 상설기구화되며 권력이 커지는 모습. 이런, 신나서 조선까지 가버렸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재신과 추밀이 모여서 하는 또 다른 재추회의인 식목도감 봅시다 식은 즉위식 ,결혼식 할 때의 식이고 목은 차례입니다.
즉 재추들이 모여서 국가 중요 행사를 회의하는 임시 기구였죠.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은 고려만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기구입니다.
(2성 6부는 당에서 영향을 받음)
그리고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이 만나는 것처럼, 중서문하성의 낭사그리고 감찰 기관인 어사대도 만납니다.
우선 낭사는 언론, 그리고 어사대는 감찰 기관이라 했습니다. 이 둘이 만나서 뭘 할지 예상가시죠?
어사대의 감찰 자료를 토대로 왕에게 ’이 사람은 안됩니다! 이 사람을 빼십시오! 이사람을 탄핵시키옵소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이들을 바로 ’대간‘ 이라 합니다. 대간들이 하는 일이 뭐냐면 서경, 간쟁, 봉박입니다.
서경이라 하는 것은 서명, 어떤 정책이 있으면 그걸 대간이 서명을 해야 일이 굴러가는 겁니다. 강력한 권한이 있는 거죠.
간쟁은 사극에서 많이 보셨을 텐데, ’ 폐하,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제 목을 치십시오 ‘ 하는 겁니다.
봉박은 서류를 보고, 이건 아니다 싶은 건 다시 편지를 봉해서 되돌리는 것이죠.
이런 기능들을 미루어보아 대간은 어떤 역할이었을까요?
바로 왕권 견제입니다. 독재를 막기 위한 장치죠.
고려에선 중서문하성의 낭사 그리고 어사대가 만나 언론의 역할을 하지만 조선으로 가면 아까 말한 삼사가 혼자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고려의 삼사는 회계만을 담당하고 조선의 삼사만 언론 기능을 보입니다. 기억!
중앙 행정 제도를 낱낱이 파헤쳐봤습니다.
중앙 했으면 지방도 해야겠죠?
중앙이 2성 6부라면 지방은 5도 양계로 운영합니다.
그런데 아까 최승로의 건의에 의해 시행된 ’ 12목 지방관 파견’ 기억나시나요?
12목을 시행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5도 양계로 바뀝니다. 지방관을 파견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대신 전국을 12목이 아닌 5도
양계로 나누어 파견하죠.
지도 다시 보겠습니다.

복잡할 것 없이 5도와 양계가 어떤 기능을 했는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5도는 주로 행정적 기능을 담당하고, 양계는 군사적 기능을 담당합니다.
지도를 보시면 고려도 고구려처럼 북쪽에 천리장성을 지었습니다. 이 천리장성은 거란족 때문에 지은 건데, 북쪽 경계선 지역에 양계 보이시죠? 경계선을 기점으로 북쪽을 북계, 동쪽을 동계라고 합니다.
북쪽에서는 거란과 여진이 쳐들어오고, 동쪽에서는 일본이 쳐들어오니까 국방을 위해 만든 것이죠.
그럼 이 양계에 파견된 지방관은 누굴까요? 이미 배웠습니다.
병마사죠.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지방관의 이름이 병마사인 거고, 이 병마사를 관리감독, 즉 국방을 관리하는 회의가 도병마사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신다면 완벽히 이해하신 겁니다.
그다음 5도에 파견된 지방관을 안찰사라고 합니다.
고려가 참 조선과 헷갈리는 게, 삼사도 그렇고 비슷한 이름이 정말 많은데요
5도에 파견된 지방관은 안찰사, 조선 시대 지방관의 이름은 관찰사라고 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안찰사는 상설기구가 아니라는 점. 즉 어느 한 지역에 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반대로 조선 시대의 관찰사는 늘 한 곳에 있습니다. 이것을 감영이라고 합니다.
5도 밑에는 4 도호부 8 목, 또 그 밑에는 주, 군, 현 등등.. 뭐가 많은데 그냥 느낌만 기억하시면 돕니다.
우리도 도, 시, 구 , 동으로 잘게 나뉘잖아요? 그거랑 비슷합니다.
또 시에는 시장, 동에는 동사무소장, 등등 파견된 공무원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고려에도 ‘현’까지는 중앙에서 수령이 파견되었습니다. 사또라고 보시면 됩니다.
A : 그럼 주, 군, 현 보다 더 하위 집단명인 지역은 수령이 파견 안된 건가요?
정확합니다.
그보다 더 작은 지역은 각 군과 현에 속해 있다 하여 속군 또는 속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특수행정구역으로 구분된 지역도 있었습니다.
향, 부곡, 소인데, 향과 부곡은 주로 농사를 짓는 사람, 소는 수공업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들은 다른 군현민과 다르게 차별을 받았습니다. 같은 양민이지만 세금도 더 많이 내고, 이주의 자유 또한 없었습니다.
약간 감옥 아닌 감옥 개념인데, 군현 등에서 사는 사람이 죄를 짓거나 하면 향, 부곡, 소로 떨어지는 거죠. 중요한 건 이런 속군, 속현, 향, 부곡, 소에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 지역을 방치한 건 아니었어요. 실질적으로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향리라고 합니다. 향리, 오랜만에 나오죠? 향리들은 관직이 지방관이 아니다 뿐이지 그 지역을 다스리면서 국가로부터 월급도 받습니다.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이 보여야 할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 고려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지방관이 파견되었는데, 이 지방관이라는 것은 모든 지역에 파견되지는 않았구나. 군, 현까지만 파견되고 속군, 속현, 향, 부곡, 소는 향리들이 다스리고 있구나.
자 그러면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Q. 고려 시대에는 땅 면적 상으로 주, 군, 현이 많을까요 아니면 속군, 속현, 향, 부곡, 소가 많을까요?
후자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중앙에서부터 파견되는 지방관이 없다고 했죠?
즉 고려 사회는 중앙집권적 사회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왜? 중앙의 영향권 내인 지역이 영향권 외의 지역보다 훨씬 적으니까요.
그러면 영향권 외의 지역인 속군~소에는 군인도 없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고려의 군대는 중앙군은 2군 6위, 지방 군은 주현군, 주진군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중앙군에게는 군적이 있습니다. 월급을 받는다는 소린데, 그러면 직업군인의 성격을 갖고 있겠죠? 월급으로 군인전이라고 토지를 지급받았습니다.
반면에 지방군들은 안쓰럽겠지만 공통적으로 군적이 없습니다
지방군 중에서도 양계에 파견된 지방군은 아무래도 국경선에 있으니까, 진을 짜야겠죠? 그래서 주진군이라 하고, 5도에 파견된 다른 지방군은 주현군이라 합니다.
주진군은 국경선에 있으므로 상비, 즉 그냥 경계선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군생활도 하는 거죠. 주현군은 예비입니다. 때때로 훈련을 받는 거죠. 완전 지금과 똑같지 않나요? 군대가면 최전방이 제일 빡센거 처럼요.
이렇게 고려는 중앙집권적 성격보다는 지방분권적 성격을 띠고, 지방의 실세는 향리라는 점을 기억해 두시고 넘어가면 되겠습니다.
고려 호족들에 의해서 나라가 세워지고, 또 우여곡절 끝에 안정기가 찾아오기까지 알아보았습니다.
키워드 정리를 보면서 복기하고 끝내죠.
| 고려 전기 | 무신정변 | 고려 후기 | 조선건국 | ||||
| 구분 | 초기 | 중기 | 1170년 | 원 간섭기 | |||
| 주도 세력 | 호족 | 문벌귀족(중앙) 향리 (지방) |
무인 | 권문세족 | 신진사대부 (성리학) 신흥무인세력 |
||
| 업적 | |
| 태조 | 민생안정 - 감세, 흑창 호족정책 - 사성제도, 사심관제도 북진정책 <정계> <계백료서> <훈요10조> |
| 광종 | 노비안검법 과거제 호족숙청 공복제정 칭제건원 - 광덕, 준풍 |
| 경종 | 시정 전시과 |
| 성종 | 최승로 시무 28조 지방 12목 지방관 2성 6부 문벌귀족 등장 ( 과거와 음서를 통해 관직 독점 ) |
| 중앙 행정 | |||
| 중서문하성 | 재신 (고위) | 심의 | |
| 낭사 (하위) | 언론 | ||
| 상서성 | 6부 | ||
| 중추원 | 추밀 (고위) | 국군기무 | |
| 승선 (하위) | 비서 | ||
| 어사대 | 감찰 | ||
| 삼사 | 회계 | ||
| 재추회의 | 중서문하성 재신 + 중추원 추밀 |
도병마사 | 국방회의 |
| 식목도감 | 행사회의 | ||
| 대간 | 중서문하성 낭사 +어사대 | 서경 간쟁 봉박 | |
| 왕의 독재 견제 | |||
| 2군 6위 | 군적 존재 - 군인전 지급 | ||
| 지방 행정 | |||
| 지역 | 12목 - 5도 양계 | 안찰사 파견 (5도) | |
| 지방관 파견 | 5도 양계, 4도호부 8목, 주, 군, 현 | ||
| 향리 | 속군, 속현, 향, 부곡, 소 | ||
| 주진군 | 군적X | 상비군 | 병마사 파견 (북계) |
| 주현군 | 예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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