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신걸 보아, 자격증이 목표신가 보군요.
출제 빈도에서 정치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문화를 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부분입니다.
이번 글은 고대 국가의 문화 중에서도 경제와 사회 부분을 알아보죠.
이미 나라들의 내부 사정과 설명은 앞선 글에서 지겹도록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빠른 복습 차원에서 주석은 줄이겠습니다.
1. 고대 국가의 경제
경제는 또 잘게 세금, 토지제도, 경제활동, 무역으로 쪼개볼 수 있겠네요.
1-1. 세금과 토지제도
우선 세금은 고대나 중세나 사실 똑같아요. 일반 백성들이 내는건 3가지였죠. 조세, 공납, 역
이 세금을 걷는 국가의 입장에선 어디에 누가 얼마만큼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마을에 어떤 특산물이 있는지, 어디에 사람이 많은지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 정리해 놓은 문서가 있는데요. 통일신라의 민정 문서입니다.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는 등 토지제도에 관심을 보이던 신라에 이르러서 체계적인 조세 수취 문서가 등장하는 모습입니다.
이 민정 문서라는 것은 나중에 고려, 조선으로 넘어가면 사람을 조사하는 호적과 토지를 조사하는 양안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민정 문서는 놀랍게도 일본에서 발견됩니다. 통일 신라의 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에 대한 문서였는데, 서원경은 지금의 청주죠. (청주는 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토지제도에 대해 보자면 크게 수조권, 소유권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수조권이라 하는 것은 관리에게 주는 권리였는데, 월급의 개념이라고 말씀드렸었죠?
소유권은 백성에게 있는 것입니다. 관리에게 녹읍, 관료전을 주듯 백성에게도 주는 것이 있었는데요.
통일 신라 성덕왕 때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합니다.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려나 조선시대로 오면 민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 이름들을 보면 토지의 소유권과 관련이 있구나~ 생각하시면 되는 거죠.
토지에 대해 순서를 정리하자면 녹읍 폐지, 관료전 지급 -> 정전 지급 -> 녹읍 부활입니다.
1-2. 경제활동과 무역
이어서 당시의 경제 활동을 봅시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다 시킨다지만, 10년 전을 생각해 보시면 시장이 활발했죠?
시장의 시초는 신라 지증왕 때인데, 그땐 이름이 동시였습니다.그리고 이 동시를 관리하는 곳이 동시전. 신라 편에서 잠깐 보고 갔죠.
그런데 통일신라가 되면서 수도인 경주에 더 많은 인구가 몰리게 됩니다. 동시 하나로 부족한 거죠. 그래서 서쪽, 남쪽에도 시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서시, 남시)
그리고 통일신라는 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앞까지는 삼국시대도 그렇고 거의 끊임없는 전쟁, 그 뒤로는 외부의 끊임없는 침입이 계속됩니다.어느 정도냐면 고려는 10-11세기 거란 12세기 여진 13세기 몽골 14세기 홍건적 등등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혼란 속에서 딱 200년 전쟁이 없던 시기가 통일신라입니다.
당시 중국의 당나라가 굉장히 안정화되어 있었던 것도 평화의 이유 중 하나일 테죠.
통일 신라의 활발한 무역 활동의 배경 먼저 설명해 보았고 이제 어떤 무역이 있는지 볼텐데요.
법화원과 청해진, 앞에서 한번 했죠? 장보고의 활동 무대입니다. 1960-70년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안정화된 미국에 간 것처럼, 당시의 신라인들도 돈을 벌기 위해 당나라로 많이들 갔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한인타운처럼 당나라에도 신라인들이 모인 신라방이 생깁니다. 이렇게 무역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그럼 우리나라의
국제 무역항은 어디였을까요? 청해진? 아닙니다.
바로 경주와 가까운 곳, 울산항입니다.
국제무역항은 항상 수도와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물건이 들어왔을 때 그 물건들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기 때문이죠. 그 귀족들은 바로 수도에 몰려있고요.
몰려오는 외국 상인들 중에서도 특히나 아라비아 상인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중에는 아예 정착해 버리는 상인들도 많았습니다.
당시의 왕, 원성왕의 무덤인 원성왕릉을 보면 무인상이 있는데, 외국과의 교류를 보여줍니다. 딱 봐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렇죠?
청해진, 울산항에 이어서 또 중국과 직교역이 가능했던 당항성이 있습니다.
한강을 차지했던 신라 전성기의 진흥왕, 한강 장악하고 신나서 북한산비 세우고 기억나시죠?
아 그리고 제가 공부할 때 항상 헷갈렸던 부분인데 통일신라를 말할 때도, 신라를 말할 때도 대부분 그냥 다 신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왕의 이름을 보고 통일신라 시기인지, 삼국시대의 신라인지 유추해내야 하죠 ㅋㅋ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아무튼간에 청해진, 울산항, 당항성으로 남쪽이 교류에 활발할 때, 북쪽도 마찬가지로 중국과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발해는 상경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깨알 복습]
A: 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한 발해의 왕은?
발해 역시 중국과 교류가 많으니까 당나라 사람들이 발해관이라는 것을 지어줍니다. 발해인들이 와서 숙소로 묵을 수 있는 일종의 여관 개념이죠.
발해의 교역로를 보시면 알겠지만 굉장히 다양합니다.

모두 상경에서 시작해서 신라로 가는 신라도도 있고, 거란도도 있고, 일본도도 있습니다.
예외로 당나라로 가는 길은 조공도라고 합니다. 이때 아시아의 관계는 모두 중국과 조공 책봉 관계였으니까요.
발해의 행정 제도 5경 15부 62주, 이 15부 중에서도 솔빈부가 특히 말이 아주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반도가 안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가 트이는 모습. 기억해 두시고 넘어가죠
2. 고대국가의 사회 모습
사회 파트 역시 신라를 중심으로 가는데요, 발해가 자료가 많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릴까요.
신라 사회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단어는 화랑도, 화백회의, 골품제입니다.
먼저 화랑도는 진흥왕이 개편했는데, 말 그대로 개편이지 화랑도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당시의 신라 사회는 굉장히 폐쇄적인 골품에 의해 움직입니다. 꽉 막힌 사회는 오래가지 못하죠. 그런데도 신라는 통일신라의 멸망까지 거의 일 천년의 역사를 썼습니다.
어딘가 꽉 막힌 사회 속에서도 숨통을 트일만한 요소가 있던 거겠죠? 그중 하나가 화랑도입니다.
화랑도는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어울리고, 몰려다닐 수 있어서 계급 갈등을 완화시켜 주던 도구로 작동했습니다.
이 화랑도가 진흥왕에 이르러 국가 조직으로 개편된 거죠.
그다음 화백회의는 신라의 귀족 회의입니다. 만장일치로 협의하는 독특한 회의였죠.
( 고구려 - 제가 회의 백제 - 정사암 발해 - 정당성)
마지막으로, 골품제를 보고 마무리하죠.
당시 신라는 정말 신분 하나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크기의 수레를 쓸 수 있는지까지 모두 달랐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족쇄였죠.
쉽게 말해 골은 귀족, 품은 일반인입니다.
대표적인 품 출신의 인물은 신문왕 때 화왕계를 썼던 설총, 원효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최치원, 최치원은 당시 당나라의 빈공과에 합격하는 등 명문으로 이름을 날립니다.
그런데 이름을 알리고 귀국하고 보니 통일 신라의 말기, 중앙에서 귀족들이 피 터지게 다투는 겁니다.
그걸 본 최치원은 나라가 망할 것 같아 시무 10조를 써서 올립니다. 하지만 역시 신라에서는 6두품의 한계 때문에, 그가 왕에게 올린 시무 10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그의 후손인 최승로 또한 고려의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내밀죠. 그런데 고려부터는 중세라고 구분한 것 기억나시나요? 바로 인간 자유의 확장 구분점이죠.
최치원의 시무 10조는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최승로의 시무 28조는 받아들여집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고대와 중세의 차이점입니다.
다음 글은 고대의 종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원래는 한 번에 담으려 했는데 다 적고 보니 종교 부분만 1만 자를 넘기더군요.
참고로 지금까지 쓴 게 4천 자 남짓입니다.
그럼 2편에서 뵙죠.
| 경제 | 사회 |
| [세금] 조세, 공납, 역 |
[화랑도] 진흥왕의 개편 계급갈등 완화 |
[토지] 신문왕 - 녹읍 폐지, 관료전 지급 성덕왕 - 정전 지급 (소유권) 경덕왕 - 녹읍 부활 고려,조선 - 정전에서 민전 |
[골품제] 폐쇄적인 사회 신문왕 설총 (원효 아들) 진성여왕 시무 10여조 |
| [경제활동] 지증왕 - 동시(전) 통일 이후 서시 남시 확장 |
[회의] 제가 회의 (고구려) 정사암 (백제) 화백회의 (신라) 발해 (정당성 회의) |
| [무역] 당항성 - 진흥왕의 한강 점령 청해진 - 신라방 울산항 아라비아 교역 증거 : 원성왕릉 무인상 발해 : 신라도, 거란도, 일본도, 조공도 당나라의 발해관 설치 |
'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대 국가의 문화 3 [기술과 교류] (2) | 2023.07.02 |
|---|---|
| 고대 국가의 문화 2 [종교] (0) | 2023.07.01 |
| 남북극시대 - 발해 (0) | 2023.06.30 |
| 남북극시대 - 통일 신라 (0) | 2023.06.30 |
| 삼국 완전 정복 - 신라 (0) | 2023.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