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땅을 완전히 차지합니다.
그리고 신라에 순순히 조아리지 않겠다며 위로 떠난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죠.
남쪽에는 통일신라가, 북쪽에는 발해가 자리를 잡은 남북극시대입니다.
남북극시대지만, 이번 글에서는 통일신라를 톡 떼어서 알아볼 텐데요, 통일신라는 특히나 말기에 후삼국이 등장하면서 꽤 양이 많으니 중간에 헤매지 않도록 글을 잘 따라가 봅시다. 그리고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통일신라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봅시다
문무왕부터 피살되어 죽는 비운의 왕 혜공왕까지를 전기로,
그리고 선덕왕부터 경순왕까지를 후기라고 나눠보겠습니다.
통일신라는 전기와 후기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1. 통일 신라 전기
신라는 뒤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경쟁을 이루며 문화 강국 백제와 군사 강국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룹니다.
통일신라의 왕은 보통 무열왕부터 서술을 하는데요, 김춘추가 더 익숙하실 겁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의 왕이라는 특징이 있죠. 신라는 골품제에 의해 기존에는 성골 출신이 세습을 해왔었지만, 선덕여왕을 끝으로 성골 출신의 대가 끊겨버립니다. 그리하여 등장한 왕이죠
무열왕이 했던게 뭐가 있었죠? 김춘추라는 이름을 떠올리시면 쉽게 생각나실 겁니다.
우선 당나라에 가서 나당연합을 체결시키고, 후에 백제를 멸망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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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인 문무왕도 백제를 멸망시킨 아버지를 따라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문무왕은 나당전쟁까지 승리로 이끌고, 결국엔 삼국을 통일한 왕이었죠?
삼국을 통일한 장본인이다 보니, 문무왕은 나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각별했나 봅니다.
죽어서 동해 바다의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긴 걸 보면요.
아무튼 문무왕은 삼국을 막 통일한 만큼, 아직까진 나라에 고구려와 백제의 성격을 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즉 왕권을 강화시켜야 했습니다.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제도를 알아보죠.
우선 상수리 제도입니다. 상수리는 인질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단어가 인질이다 뿐이지,
각 지방의 힘 있는 귀족들을 경주에 와서 살도록 한 것이 전부입니다. 서울에 기업들이 몰린 것처럼, 수도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 거죠.
경주는 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수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외사정입니다. 말 그대로 외의 사정을 본다. 즉 지방에 감찰을 보내는 제도였습니다.
이어서 그의 아들 신문왕도 통일 신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곧 알게 되시겠지만, 뭔갈 정말 많이 합니다.
신문왕이 즉위할 당시, 김흠돌의 난이라는 게 일어납니다. 이걸 명분 삼아 신문왕은 진골 귀족들을 숙청해 버립니다. 김흠돌의 난을 명분 삼아 깔끔하게 왕권을 강화시킨 똑똑한 왕입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법흥왕이 설치했었던 상대등은 신라의 귀족회의인 화백회의장의 명칭인데, 이 상대등의 권한을 낮춥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귀족보다 왕의 발언에 힘이 실리겠죠? ( 백제에도 정사암, 고구려에도 제가 화의라는 게 있었습니다. )
이렇게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왕의 세력인 집사부 시중의 기능은 강화시킵니다.
말만 들어도 집사인걸 보니 왕의 잔잔바리 일들을 처리해 주는 기관이었겠죠? 그 집사부의 최고 관리가 시중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라의 골품제에 의해 차별받고 있던 ‘품’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으로 6두품 출신의 설총이 있겠네요
신문왕은 왕의 자리에 앉자마자 정말 강하게 나가는군요.
정치적 업적만을 나열했는데,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이제 경제적으론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봐야겠죠.
먼저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합니다. 녹읍이란 무엇이냐. 지금의 공무원들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이야 월급을 돈으로 받습니다만, 조선 후기의 상평통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마땅한 유통화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토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착각할 수도 있는데요, 토지의 소유권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 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을 받아갔습니다. 소유권이 아니라 수조권을 받은 거죠. ( 걷을 수, 세금 조 )
대체 무슨 차이일까요?
농민들이 내는 세금은 조세, 공납, 역이 있는데 조세는 그 땅에서 나온 생산량의 일부를 내는 것이고, 공납은 그 지역의 특산물, 역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중 역은 아직까지도 있습니다. 남자라면 가야 하는 군대겠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관리들은 땅의 수조권을 받았다고 했죠? 그리고 그 세금은 조세, 공납, 역이고요
그러면 이 귀족들이 수조권을 받았을 때, ‘역’을 이용하여 군사력을 키울 수 있게 됩니다.
A라는 마을의 수조권을 받고, A 마을의 사람들을 자신의 군으로 편입시키는 거죠.
귀족이 군사력을 가진다는데 왕이 좋아할까요? 그것도 왕권강화에 혈안이 된 신문왕이 말입니다.
그래서 녹읍을 폐지한 겁니다.대신 관료전을 지급하기로 하죠. 관료전은 조세와 공납은 그대로지만, 역만 없는 겁니다.
귀족들이 힘을 가지는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제도죠.
이렇게 그 전후 사정을 알고, 제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면 실제로도 느끼시겠지만 단순 암기보다 기억이 훨씬 오래갑니다.
마치 저희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동화의 내용처럼요
다음으로는 신문왕의 사회 부분 개혁을 보겠습니다. 특히나 초기의 왕들은 업적이 많은데 걱정 마세요.
나중 가면 오히려 할 게 없어요 신라가. 오히려 후삼국이 더 많죠.
지금 볼게 많은 이유는 간단히 삼국을 통일한 직후라서 할 일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땅이 넓어졌으니 그만큼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야 하죠.
그래서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눕니다. 지방 행정 제도라고 하죠.
신라가 아니더라도 이런 지방 행정 제도는, 한능검 시험에 지도로 자주 제시되기 때문에, 익혀두시면 좋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다음과 같은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춘 나라에서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A : 주가 9개고 작은 경이 5개네? 그러면 신라에서 일어난 사실을 고르면 되겠구나.
마찬가지로 8도 지도를 보면 조선을, 5경 15부 62주를 보면 발해인 것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어쨌든 9주 5소경은 통일신라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에는 수도가 경주인 것이 별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통일이 되니까 수도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겁니다. 편재성이라고 하죠.
수도가 너무 아래에 있으니 통일시킨 고구려, 백제의 영토를 다스리기 원만하지 않겠죠?
그래서 말 그대로 경주를 전국에 복사시킵니다. 작은 경주라 소경이죠. 이름 정말 단순히 짓습니다.
5소경, 5개의 작은 경주를 전국에 설치하여 통일신라 수도의 편재성을 극복합니다.
그리고 군사 체제로 9서당 10정을 운영합니다. 9서당은 중앙군, 10정은 지방군입니다.
근데 신라는 9주 5서경이니까, 각 주에 중앙군이 하나씩 해서 9서당인건 알겠는데 왜 10정일까요?
왜냐하면 그 9개의 주 중에서, 유독 큰 주가 있어서 그 주에는 지방군이 2개 편성됐습니다.
큰 이유는 없죠? 넘어갑시다.
신문왕은 뒤늦게 생각합니다. 너무 강압적인 왕권 강화만 추구하면 언젠가 일이 터진다.
그래서 국학을 세웁니다. 이전까지의 정책은 그저 강제성에서 비롯된 복종이라면, 국학을 통해 자발적 복종을 계획합니다.
바로 유학을 가르치는 거죠. 유교 경전에서 가르치는 걸 생각해 보면 영리한 계획입니다.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도록 논리를 주입시키는 형태죠. 정말 노련한 정치인이군요.
여기까지가 신문왕의 업적인데, 휴~ 너무 정보를 꽉꽉 채웠죠?
신문왕에 대한 스몰토크를 하면서 조금 쉬어가 보죠.
신문왕의 아버지인 문무왕이 말하길, 나는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신문왕은 그런 문무왕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즉위한 후 감은사라는 절을 짓습니다.
이름도 쉽죠? 감사해서 감은사. 감은사지 3층 목탑. 입에 착착 붙습니다
실제로 감은사지 3층 목탑의 아래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용이 된 아버지가 계실 자리를 만들어 둔 거죠.
불기만 해도 태평성대가 찾아온다는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도 바로 여기에 묻혀있었습니다.
조금 환기되셨을까요?
그럼 이어서, 통일 신라의 말기로 가보죠.
2. 통일 신라 말기
방금까지 보셨다시피, 신라가 초기에는 신문왕을 지나며 아주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은 항상 오래가는 법이 없군요 신라의 말기에 진골 출신의 왕, 혜공왕이 피살되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정치에는 항상 명분이 필요합니다. 신문왕 때 김흠돌의 난을 명분 삼아 진골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이 강화된 것처럼요.
반대로 김헌창의 난은 왕권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즉, 김흠돌이란 키워드를 보시면 통일신라 초기, 신문왕 때에 왕권이 강한 모습을 떠올리시고
김헌창이란 키워드를 보시면 통일신라 말기, 왕권이 약하고 혼란한 상황을 떠올리시는 겁니다.
그럼 김헌창의 난이 도대체 무엇이냐? 바로 진골 귀족들 간의 세력 다툼입니다.
그런데 세력 다툼이라 함은, 귀족에게 힘이 생겼다는 말인데 분명 귀족들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녹읍을 폐지하고, 상대등의 권한도 낮추지 않았습니까?
당연하게도 귀족의 군사력 증진을 막아주던 녹읍이 부활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경순왕 때에 귀족들의 반발에 못 이겨 부활한 것인데, 어찌 보면 신라 멸망의 첫걸음을 내디딘 거나 다름없었죠.
중앙에서부터 귀족들이 서로 싸우고 난리를 치는데 지방에 대해 통제가 됐을까요?
당연히 안 되죠, 그랬더니 지방에서 내가 성주야! 내가 장군이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에선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빠서 이런 지방의 사정을 케어하지 못한 거죠.
그들을 뭐라고 하냐면 호족입니다. 스스로를 장군, 성주라고 지칭하는 호족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2-1. 지방 호족들의 성장
먼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호족 하면 무조건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조건이요.
중요한 사실이기도 하고, 남자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거든요.
바다의 신 장보고. '해신 장보고' 웅장해집니다 벌써.
원래 장보고는 이름도 없었고 출신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니까 장보고라는 이름은, 그가 성인이 되어서 자기 스스로 지은 이름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완벽한 흙수저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죠.
당시에 흙수저들은 가슴 아프게도 꿈을 가지는 건 금기였습니다. 왜일까요?
신라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는 매우 엄격합니다. 태어난 신분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죠.
그래도 신분 상승에 0.000001%의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절 대!! 없습니다. 그래서 흙수저가 꿈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면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항상 가로막혔습니다.
그래서 장보고도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활을 굉장히 잘 쏴서 장군이라는 꿈을 가졌지만 아무리 활을 잘 쏴도 신분의 벽에 부딪혀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장보고는 바다를 보며 생각합니다. 이 좁은 나라에서 고작 신분 따위에 인생을 가둘 순 없다.
동시에 결심합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그 푸른 바다를 넘어가기로..
여러분, 현재를 생각해 보세요. 저기 바다 건너 무엇이 있을까? 검색하면 1분 만에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땐 아니었습니다. 바다 건너 무엇이 있을지는 흙수저에게 주어진 정보 권한의 밖이었죠. 무역을 관장하던 관리라면 모를까. 장보고에겐 정말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바다를 건너 도착한 게 바로 당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장보고가 워낙에 활을 잘쏘다보니깐, 군대에 들어가 초고속 승진합니다.
역시 사람은 잘하는 게 있으면 언젠간 성공합니다.
장보고는 계속 승진하다 보니, 점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런 와중에 장보고의 눈에 들어온 건 바다를 왔다 갔다 하는 무역선이었습니다.
부하에게 물어보죠. 저거 돈 좀 되냐? 돈이 됩답니다.
장보고는 바로 무역업자로 전환합니다. 그리고는 무역을 하기 위해 중국에 와있는 신라인들을 모아 일종의 네트워크 기지를 만드는데요. 법화원이라는 사찰에 신라인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모으게 되죠, 농담이 아니라 빌게이츠와 견줄만합니다.
장보고가 어느 정도냐면, 당시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장보고 알아? 하면 아~ 그 부자? 하는 정도였습니다.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요?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역사에서 오직 단 한 명, 유일하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평민 출신이 바로 장보고입니다. 말 다했죠?
그렇게 돈을 쓸어 담던 장보고는 어느 날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끌려가서 노예시장에 팔리는 걸 목격합니다. 그길로 장보고는 신라로 귀국하여 왕을 만납니다.
이게 진짜 금의환향 아닙니까? 가난하고, 차별받던 장보고가 이젠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온 겁니다.
장보고가 말합니다. 내가 해적들을 소탕할 테니, 나한테 기지를 만들어줘.라고요
그렇게 형성된 기지가 청해진입니다. 지금의 완도죠. 놀랍게도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했다.라는 글귀를 마지막으로 신라의 역사서에서는 해적이란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제압했단 소리죠.
장보고는 이제 꿈에 도전하려 합니다. 신분의 벽을 깨기 위해 자신의 딸을 왕실로 집어넣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죠.
그러나 자신의 심복이던 염장의 칼에 찔려 해신의 삶은 정말 허무하게 막을 내립니다.
다들 말하잖아요. 염장 지른다~ 이게 여기서 유래된 겁니다.
사심이 들어간 호족의 1세대, 장보고의 이야기였습니다. 조금만 하려 했는데 봇물 터지듯 적어버렸군요.
A : 그런데 통일신라 말기에 대해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왜 호족 쪽으로 이야기가 빠지죠?
바로 호족의 2세대들이 후삼국 시대를 열던 주인공입니다. 통일신라와 후삼국 시대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통일신라의 말기가 곧 후삼국 시대의 초기나 다름없거든요.
호족의 2세대 중에서 견훤, 궁예, 왕건에 대해 알아보죠.
3. 통일 신라의 쇠퇴 + 후삼국 시대의 시작
먼저 견훤은 신라의 중앙이 귀족들의 다툼으로 혼란스럽자 그 틈에 지방에서 키운 힘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우려 합니다. 호족들의 힘이 어마어마했다는 소리입니다.
이게 그냥 '내 나라를 세우고 왕을 할 거야!' 하며 억지 부리며 소꿉놀이를 한 것이 아니고 중국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할 정도로 시스템을 갖춘 ‘진짜 나라’를 세웁니다.
바로 후백제죠.
견훤은 도읍을 완산주로 정하고 막 성장하는 와중, 라이벌이 생깁니다
바로 위에선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운 것이죠. 궁예 또한 호적이었습니다.
송악에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이후 철원을 도읍으로 정합니다. (궁예는 국호를 마진으로, 그리고 또 나중에는 태봉이라고 나라 이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후고구려도 후백제 못지않게 국가적 시스템을 정말 제대로 갖췄는데,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고려 도병마사의 모델이 되기도 하죠.
아~ 신라 정말 개판입니다. 나라 안에 나라가 두 개가 있습니다. 마트료시카입니까?
당시의 지도를 보자면 이렇습니다.

송악은 분명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의 위치인데, 후고구려는 어디 가고 고려는 또 뭐냐고요?
예리합니다.
고려는 왕건이 세운 것인데, 왕건은 원래 궁예 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궁예가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옮긴 뒤
부터 뭔가 이상해집니다.
점차 강화된 왕권에 취하면서 수많은 부하를 죽이고, 사치와 낭비를 자행하여 민심이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아래는 당시 관리의 제보영상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하고 관심법을 쓴답시고 신하를 마구잡이로 죽이던 궁예는 결국 ..........

그리고 왕건이 그 뒤를 이어 고려를 세우죠.
반면에 후백제는 아직 별 탈 없이 굳건합니다. 신라는 후백제와 고려에 의해 점점 밀리고요.
결과론적으로는 왕건이 세운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지만, 통편집할 순 없으니 대표적이고 중요한 전투 딱 3가지만 보고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공산 전투. 견훤과 왕건이 붙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고 아직은 어수선한 고려가 여태까지 잘해오던 후백제를 이길 순 없었죠.
당연히 후백제가 이기고 심지어는 왕건이 죽기 직전까지 내몰립니다. 그때 왕건의 충신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대신 입고 싸우며 도망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왕건은 겨우 살아서 도망쳤죠.
왕건은 복수하기 위해 다시 붙습니다.
바로 두 번째 전투, 고창전투입니다. 고창전투 역시 견훤과 왕건의 대결입니다.
여기서 왕건이 이기긴 했지만, 아직 통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후삼국 통일을 하게 되는 결정적 전투는 바로 일리천 전투였습니다. 바로 신검과 왕건의 대결이었죠.
그런데 견훤이 왕건과 함께 나타납니다.
어?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놀랍게도 견훤은 오히려 왕건 쪽에 붙어있어서, 신검과 왕건/견훤의 대결이었죠.
그럼 견훤은 후백제를 배신해서 왕건과 함께 싸우는 걸까요?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신검은 견훤의 아들이었습니다.
신검은 당연히 자기가 첫째 아들이니 왕위에 앉을 거라 생각했지만 견훤은 더 밑에 있는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 했습니다.
그러자 신검이 열받아서 아빠를 금산사에 유폐시켜 버립니다.
결국 견훤은 금산사에서 도망쳐서 왕건에게 부탁을 합니다. 후백제를 공격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이죠.
인생은 역시 알 수 없군요.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견훤이 애써 키워놓은 후백제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게 될 줄 말입니다.
결국엔 신검이 무너지고 후백제가 멸망하면서 후삼국은 통일되고 맙니다.
여기서 하나 의문점이 들 겁니다.
후백제는 엄청 싸웠으니 그렇다 치는데 신라와는 전투가 없었을까요?
네 없었습니다.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치고 올라오자 신라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당나라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는 등 노력을 하긴 했습니다.
별 효력이 없었을 뿐이죠.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신라의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칩니다.
볼품없는 최후군요.
그래도 그 최후의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만 체크하고 갑시다.
4. 신라의 최후
지방의 호족들이 마구마구 성장하고, 중앙에선 권력싸움이 한창이니 당연하게도 사회는 엉망이었습니다.
특히 백성들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진성여왕 때 일어난 것이 원종과 애노의 난입니다.
문화적으로는 이제 선종이 굉장히 유행했습니다. 뭐가 자꾸 키워드가 많아져서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항상 흐름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불교 종파에는 교종과 선종이 있습니다. 교종은 말 그대로 교리. 글자를 읽음으로써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고 선종은 글자가 아니라 참선을 통해서 부처님의 뜻을 깨닫는 겁니다.
대체 무슨 차이냐고요?
당시에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특권층에 국한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없는 거죠.
반대로 선종은 참선, 즉 행함으로써 부처가 될 수 있으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말은 누구나 다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가 신라시대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신라는 골품에 의해서 이미 왕이 정해져 있었단 말이죠. 그 골품에 의해서 세팅되어 있는 시스템을 깰 수 있는 논리가 바로 선종이었던 것이죠.
그럼 이 논리를 누가 좋아할까요?
바로 호족입니다. 실제로도 호족들 중 일부는 나라를 세워 왕이 되기도 했고요.비슷한 맥락으로 풍수지리도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경주의 기는 쇠했어. 내가 있는 지역에서 왕의 기운이 뿜어 나고 있어. 내가 왕이 되는 이유야’ 대충 풍수지리란 이런 것인데, 선종과 함께 풍수지리도 호족들의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됩니다.
여기까지 신라의 말기에 대해 알아보았네요.
여러분, 벌써 두 번째 통일입니다. 삼국통일에 이어서 후삼국통일이죠. 하지만 후삼국의 통일은 이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 과는 조금 다릅니다.
지도를 유의 깊게 보셨다면 알아차리셨겠지만, 통일신라의 영토는 엣 고구려의 영토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것이 진정한 삼국 통일이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후삼국이 통일된 후 고려의 영토를 보시면 옛 고구려 땅까지 확실하게 통일됩니다.
물론 저기 위의 후삼국의 지도에는 아직 나중에 고려에 병합된 발해의 영토가 포함되지 않아 있습니다.
제가 처음 올린 글에서 고대, 중세, 현대로 나누었는데, 그때 고려부터는 중세라고 했었습니다. 제가 막 나눈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통일신라 발해와 달리 고려는 무슨 차이점을 가지기에 중세라고 말하는 걸까요?
바로 인간 자유의 확장입니다. 고려 이전까지만 해도 왕위는 경주 김 씨가 독점했습니다.
그런데 고려부터는 그 성씨가 다양해집니다. 즉 실력만 있다면 고위직에 올라가는 길이 열려있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는 거죠.
장보고가 당나라로 가게 된 원인인 ‘꿈 자체를 꿀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와 확연히 달라진 겁니다.
그렇기에 왕건이 세운 고려를 기점으로 중세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기세를 몰아 고려로 바로 글을 시작하고 싶지만, ‘남북극시대’ 니까 아직 발해가 남아있습니다.
발해는 정말 남은 기록이 많지가 않아서 글도 짧을 거라 예상됩니다. 다행인가요?
독보적으로 길었던 통일신라의 이야기는 여기서 종지부를 찍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통일 신라 전기 | 통일 신라 후기 |
| *태종 무열왕(김춘추) -최초의 진골 출신 왕 -나당연합 -백제 멸망 *문무왕 -고구려 멸망 -나당 전쟁 승리 (기벌포,매소성) -상수리 -외사정 *신문왕 -김흠돌의 난 -진골 세력 숙청 -상대등 권한 약화 -집사부 시중 권한 강화 -품 등용 실시 (설총) -녹읍 폐지 -관료전 지급 -9주 5소경 -9서당 10정 -국학 설립 -감은사 |
*경덕왕 -녹읍부활 *헌덕왕 -김헌창의 난 -진골귀족 간의 왕위다툼 *원성왕 -독서삼품과 실시 *호족의 등장 -1세대 장보고 청해진 -2세대 견훤, 궁예, 왕건 *진성여왕 -원종과 애노의 난 *경순왕 -고려에 항복 |
| 후고구려 (궁예) | 후백제 |
송악에서 궁예가 건국 국호를 마진으로 변경 국호를 태봉으로 변경 철원으로 천도 폭군정치로 축출당함 왕건이 뒤를 이어 고려 건국 |
완산주에서 견훤이 건국 중국 후당,오월과 교류 고려와 공산 전투 승리( 견훤 vs 왕건 ) 고려와 고창 전투 패배 ( 견훤 vs 왕건 ) 신검 정권 교체 고려와 일리천 전투 패 ( 신검 vs 왕건,견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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