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오늘은 지난 갑신정변에 이어 대한제국의 설립까지를 배워볼 겁니다.
연도로 따지면 1884~1897입니다. 메인으로 다룰 내용은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1884 갑신정변은 소수의 엘리트들, 즉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면 1894 동학농민운동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고 볼 수 있죠.
딱 10년 차이라 구분도 쉽죠?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1884년쯤의 대내외 상황을 정리하고 시작해 봅시다.
0-1. 갑신정변 이후
갑신정변을 청나라 진압하고,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해졌었죠. 그래서 또 외세,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청을 견제할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조선이 러시아와 접촉하자, 라이벌인 영국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러시아 녀석, 중국으로 넘어가려는 거 아니야?
이때는 영국이 이미 중국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여서 충분히 가능한 의심이었죠.
그래서 영국은 러시아가 중국에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합니다.
역시 외세를 끌어들이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길준의 중립화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결국 강력한 항의로 영국은 물러납니다.
그러나 중국은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 이유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함으로 보고 내정간섭을 더욱, 더욱더 심화시킵니다.
반대로 당시의 일본은 갑신정변에서 청군과의 창덕궁 교전에서 패해서 정치적으로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경제적 침투를 노리죠. 공사관이 불탄걸 빌미로 맺은 제물포, 조일 수호 속약 기억나시죠?
또 일본은 강화도 조약 밑에 딸린 조일 무호 규칙에 의해 곡물의 반출 제한이 없어서 쌀과 면을 무한대로 교환해 갔습니다.
일본이 공장산 값싸고 품질 좋은 면제품을 마구 팔아 쌀을 가져가다 보니 쌀값이 폭등한다고도 말씀드렸죠.
이렇게 되니 기층민들이 너무 살기 힘들어진 겁니다. 게다가 당시 80년대는 여전히 개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신문물을 사 오고, 사절단을 보내는 돈은 세금을 더 거두어 충당시키는 꼴이었죠.
-근대적 교육기구 육영공원(86) (사립으로는 원산학사)
-최초의 병원 광혜원(85)
-박문국 (83)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 발간)
이 근대식 건물들이 모두 이 시기에, 그리고 모두 백성들의 부담으로 세워졌단 말입니다.
이러니 백성들은 당연히 외세에 대한 불만이 있겠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인답시고 먹고살기도 어렵게 하니 말이죠.
이 흐름 속에 일어난 게 바로 동학농민운동입니다.
1.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전국에 접을 두는 포접제
그 접을 이끄는 접주들이 피라미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어떠한 정보나 명령을 아주 빠른 속도로 확산시킬 수 있었죠.
동학농민운동의 순서가 자주 출세되는 편이니 잘 알아둡시다.
먼저 교조신원운동으로 시작합니다. 동학의 주장과 동학의 교조, 기억나신다면 아주 칭찬합니다.
인내천과 시천주 즉 평등사회, 그리고 교조(교주)는 최제우였습니다. 결국 사형당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형당한 교조의 명예를 다시 복귀시키는 운동을 한 겁니다.이게 동학농민운동의 출발이죠.
동학농민운동은 1, 2차로 나뉩니다.
지금 설명할 1차 동학농민운동은 국가에 대한 불만, 2차는 일본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우선 1차 동학농민운동은 고부의 사또, 조병갑의 횡포에 못 참고 일어난 건데, 조병갑이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짓게 합니다.
원래도 보(저수지)가 있어서 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왜 또 만드는 걸까요?세금 더 걷으려고요.
불필요한 저수지를 굳이 지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불합리하잖아요
그에 대한 저항 속에서 일어난 게 고부 농민 봉기입니다. 조병갑이 쫓겨나면서 거기서 마무리되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내려왔던 안익사 이용태가 고부봉기 주동자를 잡아들여서 다시 백산봉기가 일어납니다.
실질적으로 이 백산봉기가 어찌 본다면 동학농민운동의 진정한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고부농민봉기처럼 사또만 쫓아내고 멈추는 모습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진격입니다
진격의 농민군은 백산봉기 때부터 관군들과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황토현,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상대로 이깁니다. 그리고는 전주성까지 점령하는 브레이크가 없어진 농민군.
최대곡창지대 전라도의 관문, 전주성이 함락되자 정부는 깜짝 놀랍니다. 이 멍청한 정부가 무슨 선택을 했을지 느낌 오시나요?
늘 그래왔듯 또 외세에 도움을 청합니다. 그 외세는 이번에도 청나라였죠.
여기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청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일본에도 알려야 하죠?
10년 전의 갑신정변에서 청과 일본이 체결한 톈진 조약 얘기입니다. 이 톈진 조약에 의해서 일본도 파병을 합니다.
근데 이때 일본은 조금 위험했습니다. 10년 전 갑신정변 때는 창덕궁 교전에서 일본이 청군에게 패배했었죠?
톈진조약을 맺고 서로 물러난 뒤, 일본은 복수하겠다고 10년 동안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조선은 청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뿐인데, 조선에 일본군, 청군 모두 들어와 있죠?
뭐야, 이거 전쟁 나는 거 아니야? 우리 땅에서? 이러면서 정부는 화들짝 놀라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과 화해를 해버립니다.
할 거면 진작에 하지 그랬나요. 정말 이때의 집권세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농민들은 전주성에서 철수할 테니 몇 가지 조건이 있다며 들이댑니다.
일단 농민들이 개혁에 관여할 수 있는 집강소를 설치. 이 집강소를 중심으로 폐정개혁을 이루어냅니다.
또 정부는 농민군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교정청을 만들어서 개혁을 단행하죠.
이 폐정 개혁은 신분제 폐지를 주장합니다. 갑신정변에서도 그랬죠?
더 나아가서 토지 균분, 과부들의 재가도 허용하라는 주장을 합니다.
중요한 건 주장이라는 점, 아직 완전히 정책적으로 정부가 받아들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미 청과 일본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일본은 뭐라도 확실히 하겠다는 마인드로 들어와서, 무턱대고 고종과 명성황후가 있는 경복궁을 점령해 버립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라고 불러놨더니 경복궁을 점령한 겁니다. 뭔가 의도가 있겠죠?
이렇게 고종과 명성황후를 확보한 상황에서 일본이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때립니다.
그러면서 일어난 게 바로 청일전쟁이죠. 우리나라 전 지역이 전쟁터가 되어버립니다. 이 모든 게 1894년에 일어난 겁니다
동학농민운동 일어나고, , 청일전쟁 일어나고, 뒤에 나올 갑오개혁까지.. 연도 외울 고생은 덜었군요.
이번에는 동학농민군이 깜짝 놀랍니다.
'뭐야, 경복궁이 점령됐다고? 일본이? 너네가 무슨 자격으로? 안되지 그건' 하면서 다시 일어나죠.
즉 2차 동학농민운동의 계기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입니다.
1차 동학농민운동은 내부적 불만이 많아 반봉건적 성격을 띤다면, 2차 동학농민운동은 반외세적 성격이 강하죠.
이 2차 봉기는 1차보다 규모가 더 커집니다. 아까 포접제 기억나시죠? 남접과 북접이 연합을 합니다.
그들이 일으켰던 전투가 우금치전투죠.
공주 고개를 넘어가며 벌어진 전투인데, 공주는 백제 무령왕릉, 고려 망이망소이난, 이젠 우금치 전투까지 정말 복합적인 장소입니다.
당시 일본은 청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개혁 기구인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갑오개혁을 단행합니다.
이 군국기무처는 갑오개혁뿐만 아니라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지휘역할도 담당하게 됩니다.
정말 아쉽게도 우금치 전투는 결국 패배하고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의 흐름, 잘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위로부터의 개혁 갑신정변도 실패하고 아래로부터의 개혁 동학농민운동도 실패했네요.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근대의 개혁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청일전쟁 승리 이후, 개혁 기구 군국기무처를 설치한 일본은 김홍집으로 하여금 개화정책을 추진하도록 합니다.
앞에서 봤던 이름이죠?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로서 <조선책략>을 들여온 김홍집 맞습니다.
이 김홍집이 주도하여 개혁을 실시하죠. 갑오개혁도 1, 2차로 두 번에 걸쳐 시행됩니다.
갑오개혁은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가 아닌, 청일전쟁(84~85)과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 유의하시고 넘어갑시다
2. 갑오개혁

[1차 갑오개혁]
정치면에서는 의정부 6조 체제를 의정부 8아문으로 바꾸고 궁내부를 설치합니다.
경제면에서는 도량형을 통일시킵니다. (길이와 무게의 단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게 재정을 일원화시킵니다. 사실 재정의 일원화는 앞의 갑신정변에서 주장한 내용이죠?
그래서 차이점을 주목하셔야 하는데, 갑신정변에서 주장한 재정의 일원화의 주체는 호조였습니다.(6조)
근데 갑오개혁은 이 6조 체제를 의정부 8아문으로 바꿨죠? 그래서 갑오개혁 재정의 일원화 주체는 탁지아문입니다.
호조와 기능은 동일하지만 이름을 보고 갑신정변/갑오개혁을 구분할 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세금을 일절 현물로 받지 않고, 돈으로만 받는 완전 금납화를 추진하죠.
또 1차 갑오개혁에서 잘 출제되는 부분, 은본위제를 시행합니다. 돈을 찍어낼 때 가지고 있는 은만큼만 돈을 찍어내는거죠.
마지막으로 갑오개혁의 꽃, 사회면에서는 우선 가장 중요한 신분제 폐지.
1차 갑오개혁. 이때 몇천 년간 이어진 신분제가 폐지됩니다. 과부의 재가도 허용하는 모습.
이 두 가지는 모두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며 농민들이 주장한 폐정개혁 내용이죠?
갑신정변의 14개 조 개혁안, 동학농민운동의 폐정개혁안 등 겹치는 내용이 꽤 있기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제도 갑오개혁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
아직 1차 갑오개혁인데, 정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죠?
앞의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은 주장하는 내용이고 갑오개혁은 실제로 시행했던 내용이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근데 군국기무처를 통해 1차 갑오개혁을 단행할 때는 청일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개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일본이 승기를 잡으니 욕심이 생기는겁니다.
그래서 2차 갑오개혁에 임김을 불어넣으려 하죠.
고종으로 하여금 종묘에 가서 독립서고문, 홍범 14조를 선포하도록 합니다.
특별한 건 아니고 모두 1차 갑오개혁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개입을 늘리기 위해 친일인사 박영효를 메인으로 세웁니다. 이때도 김홍집은 있습니다. 주도 인물이 박영효일 뿐
[2차 갑오개혁]
먼저 정치면, 1차 갑오개혁에서 의정부 6조 체제를 의정부 8아문으로 바꿨었죠?
이번에는 의정부 8아문에서 내각 7부로 바꿉니다. 그리고 지방의 8도 체제를 23부 체제로 바꾸죠.
중요한 것은 23부 체제로 바꾼 뒤, 각 부마다 재판소를 설치합니다. 무슨 의도일까요?
조선의 수령은 행정 군사 사법 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했습니다. 수령에게서 권한을 떨어뜨리는 거죠.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이 억울하면 서울 법원을 가지, 서울 시장에게 가지 않잖아요?
이게 2차 갑오개혁, 재판소가 설치되면서 시작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사회면에서는 교육입국 조서를 발표합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근대적 학제를 따르죠?
이 근대적 학제의 출발이 바로 2차 갑오개혁, 교육입국 조서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동시에 소학교(초등학교), 사범, 외국어학교 등을 설립하죠.
이렇게 단번에 근대국가로 나아간 갑오개혁은 정말 잘한겁니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이 모든 걸 우리 힘으로 했어야 하는데 배후에 일본이 있었다는 거죠.
1,2차 갑오개혁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드디어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러면서 일본과 청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습니다. 이 시모노세키 조약의 핵심은 조선의 자주독립입니다.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이 자주국이다~ 한 것처럼, 조선과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끊어놓기 위한 일본의 속셈이죠.
그리고 일본이 요동반도 땅을 가져가기로 합니다.
300년 전, 정명가도를 외치며 중국에 우리의 깃발을 꽂겠다 하던 일본의 꿈이 이제 와서 이루어진 거죠.
그땐 임진왜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실패하잖아요. 이 일본의 꿈을 이룬 인물이 누구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반가운 이름이죠? 너무나 잘 아시잖아요. 안중근의 손에 죽은 이토 히로부미.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이 분명 요동 반도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가지기 했습니다.
근데 요동반도는 이미 러시아, 독일, 프랑스 세 나라가 삼국간섭을 하며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이 서구열강들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는 일본은 바로 요동반도를 토해내죠.
이 모습을 보고 조선이 또 멍청한 짓을 해버립니다.
원래 이 요동반도 삼국간섭 이슈가 있기 전만 해도 조선은 일본을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청나라 군대도 물리친 나라니까요. 그래서 찍 소리 못하고 가만히만 있었는데 일본이 러시아엔 꼬리를 내리는겁니다.
어라? 그렇게 대단한 일본이 러시아 같은 나라한텐 쨉이 안되는구나? 하면서 이번에는 또 러시아를 끌어들이려고 하죠.
정말 반성이라곤 1도 없는 조선의 모습.. 그렇게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려 하지만 오히려 더 조선이 힘들어집니다.
일본이 요동반도를 잃었지만 조선까지 잃을 순 없다며 을미사변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뭔지 아시죠? 명성황후 시해 사건. 그러면서 1895년, 일본이 을미개혁을 밀어붙입니다. 갑오개혁 바로 1년 뒤죠?
3. 갑오개혁 이후
을미개혁의 내용을 봅시다. 이때 건양이라는 연호를 씁니다. 핵심은 단발령이죠. 이 단발령은 을미의병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다음 태양력, 지금 우리가 달력에 쓰는 게 이때부터 시작된 겁니다. 갑오개혁, 을미개혁 모두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죠?
또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한 종두법도 시행됩니다.
근대화에 다가서긴 했다만 갑오, 을미개혁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엄청나게 큰 걸 잃었습니다.
바로 명성황후가 죽은 거죠. 이걸 본 고종은 당연히 두렵겠죠?
흥선대원군도 떨어져 나가고, 아내 명성황후도 죽은 고종은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이런 고종이 선택했던 방법은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 외세에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내 명성황후가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다 죽은걸 보고는 이번엔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러시아공사관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관파천(1896)이라고 하죠.
비록 이 또한 외세에 의존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팽팽한 균형을 맞춰놓는 데는 성공을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개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된 것이죠.
이때 조선에 독립협회가 만들어집니다. 독립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죠.
이들의 목표는 독립문을 세우는 거였습니다. 순서를 이렇게 기억하시면 됩니다 독립신문 – 독립협회 – 독립문
근데 여기서 얘기하는 독립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청이 패배한 뒤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조선이 자주국이라고 완전히 선언한 걸 기념하기 위한 거죠.
이 독립협회가 고종에게 환궁하십시오~ 하니까 다시 돌아와서 대한제국을 선포(1897)합니다.
근데 이 독립협회가 힘을 키우면서 만민공동회를 엽니다.
그냥 말 그대로 만여 명의 민이 모여서 회의하고 시위하는 건데 어찌 보면 최초의 정치시위죠?
이렇게 모여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를 막기도 했습니다. 이 절영도는 지금의 부산입니다. 영도대교 아시잖아요.
이 영도를 러시아가 탐을 냈는데, 독립협회가 열렬히 반대하여 실패로 돌아가죠.그리고 또 한, 러 은행을 폐쇄시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만민공동회의 발언엔 힘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와서 외세와 관련된 사항에 우리가 NO. 해본 적이 있나요?
없었죠. 우리는 오히려 늘 을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민공동회를 통해서 백성의 힘을 보여준 겁니다.
더 나아가 관민공동회, 관의 대표자 박정양과 민의 대표자 윤치호가 만난 겁니다.
사실 독립협회의 직접적 관련자는 서재필입니다. 초창기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갔고 그 뒤를 윤치호가 이끌고 있던 것이죠.
아무튼 이 윤치호가 박정양을 만나 논의한 것이 헌의 6조입니다. 헌의 6조의 중요 내용과 그 의도를 보면
-입헌군주제를 지향 :고종, 혹여나 우리가 널 끌어내릴까봐 염려하지 마
-총리, 수상을 임명 : 대신 실질적인 정치는 우리가 할게
-재정의 일원화 : 의정부 8아문에서 내각7부로 바뀜과 탁지아문 -> 탁지부 중심으로 재정 일원화를 주장했습니다
-피고의 인권 존중 : 조선 시대 사극 보면 죄인 끌려오면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주리부터 틀고 보잖아요? 고통을 줘서 자백하도록 만든다 이거죠. 그런 피고들의 인권을 존중하라는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게다가 중추원 관제를 선포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봤을때, 백성들은 틀린 적이 없어요. 갑신정변도, 동학농민운동도 모두 올바른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을 탄압하기 급급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그 주장을 실제로 시행하는 갑오개혁을 하잖아요? 그러니 백성을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고종은 이때, 이들을 믿지 않고 의심을 하죠.
이것들, 내 자리를 탐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킵니다.
독립협회의 해산에 기여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두 번 정도 말씀드렸습니다. 보부상들이 모여 만든 황국협회
관허상인들로도 모자라 나중에는 군대까지 동원해서 해산시켜 버립니다.
저는 이때 고종이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봅니다.
민을 믿고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야 했는데, 오히려 그들을 믿지 않아서 혼자 해나가야 했죠.
근데 또 잘하면 몰라,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알려드릴건데 아주 개판입니다.
이 혼자 남은 고종이 광무개혁(1897~1903)을 단행합니다.
구본과 신참에 입각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죠. 어찌 본다면 이 내용은 예전에 온건 개화파가 주장했던 동도서기와 비슷합니다.
구본신참이란 옛것을 본받고 새것을 참조한다.입니다.
앞서 독립협회가 자신의 권력을 탐한다고 의심하던 고종은, 광무개혁 때 황제권을 강화합니다.
이 황제권 강화가 구본에 해당하죠. 일종의 헌법인 대한국 국제를 발표하고 (1899) 원수부를 설치합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을 원수부로 집중시켜 황제권을 굉장히 강화시키죠.
신참으로는 양전 사업을 실시합니다. 몇 번 나왔었죠 앞에서? 태종, 광해군 등등이 재정확보를 위해 했었습니다.
근데 고종의 양전사업이 구본이 아니라 신참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겠죠.
바로 지계를 발급합니다. 지계란 토지계약문서입니다. 땅문서죠
이 지계 발급의 역사적 의의는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하는 데 첫출발이란 겁니다.
이외에도 신참에선 뭐가 많습니다.
먼저 상공업 진흥을 위해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전차를 개통합니다.
전차를 개통했으니 철도가 있어야겠죠?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됩니다.
근데 여러분들, 이 광무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은 고종이 아관파천을 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팽팽한 균형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섣불리 고종의 개혁에 터치하지 못했죠.
그럼 만약 일본과 러시아의 팽팽한 균형이 깨져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광무개혁은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진도와 분량 조절을 위해 다음 글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 갑신정변 이후 청의 간섭 심화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 - 유길준의 중립론, 청의 간섭 심화 일본의 미면 교환에 의한 쌀값 폭등, 개화 정책 추진으로 백성들의 부담 증가 ( 육영공원, 광혜원, 박문국 ) |
| [동학농민운동] (1894) 포접제 바탕으로 전국적 빠른 확산 [1차] 반봉건적 성격 고부봉기 : 조병갑(만석보) 백산봉기 : 이용태의 고부봉기 주동자 체포 황토현, 황룡촌 전투, 진주성 점령 청의 출병 - 톈진조약에 의해 일본군 파병 전주화약 -집강소, 교정청 설치 -폐정개혁 : 신분제 폐지, 토지균분, 과부의 재가 주장 [2차] 1차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파병된 일본군이 경복궁 점령하자 일어남 반외세적 성격 남.북접 연합으로 규묘 확대 - 우금치 전투(공주) 실패 |
| [갑오개혁] (1894)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이 청에 선전포고함과 함께 시작 [1차] 군국기무처 : 김홍집 중심 의정부 6조 - 의정부 8아문, 궁내부 설치 도량형 통일, 재정일원화(탁지아문) 조세금납화, 은본위제, 신분제 폐지, 과부의 재가 허용, 과거제 폐지 [2차]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개혁에 영향 행세 - 친일인사 박영효 중심 : 독립서고문, 홍범14조 선포, 의정부 8아문 - 내각7부, 8도 - 23부, 재판소 설치 (수령의 권한 약화), 교육입국조서 발표 |
| [을미개혁] (1895) 일본이 청일전쟁 승리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지만 삼국간섭에 의해 요동 지역을 뱉어냄. 동시에 조선도 잃을까봐 을미사변 일으킴 (명성황후 시해) -건양 연호 사용, 단발령, 태양력, 종두법 실시 |
| 아관파천(1896) |
| [독립협회] 독립신문을 만들던 사람들이 독립문 설립을 목표로 조직. 만민공동회 - 러시아 절영도 조차 X , 한러 은행 X 관민공동회 - 박정양 + 윤치호, 헌의 6조 -입헌군주제 지향, 재정일원화 (탁지부), 피고 인권, 중추원 관제 선포 |
| [대한 제국 선포] (1897) 독립협회의 복귀 요청, 고종이 복귀 후 선포 헌의 6조에 왕권 위협을 느낀 고종이 독립협회를 해산시킴 (황국협회, 군대 동원) [광무개혁] 구본신참 (동도서기) 구본 -대한국 국제 (1899) 선포, 원수부 설치 후 권력 집중 신참 -양전사업 : 지계발급 (근대 토지소유권) -상공업 : 기술학교, 전차, 경인선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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