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흥선대원군 ~ 개항기

[이 글은 한능검 응시자분들만이 아닌,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도록 작성되었습니다]

 

 

 

0. 시작하기 앞서

 

여러분, 흥선대원군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철저히 외세를 거부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셨다면, 오늘 포스팅의 절반은 끝내신겁니다.

 

흥선대원군은 1864~1873, 개항기는 1876~1910 인데, 왜 흥선대원군은 개항기에서 쏙 빠졌을까요?

 

외세와의 접점도 상당히 많은 시기였는데 말이죠. 그건 바로 조선의 폐쇄 유무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개항 당하기전,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볼겁니다.

 

 

특히 흥선대원군은 대외 정책뿐만 아니라 대내 정책도 알차기로 유명해서 조선의 3대 개혁가로 꼽히기도 합니다.

 

(나머지 두명은 앞서 배운

기묘사화와 관련된 조광조 (주초위왕), 대동법의 사나이 김육입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개혁가이긴 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강력한 왕권이 있는 왕조 시대로 돌아가는 거였습니다.

 

미래지향적이지가 않죠? 그래서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죠.

 

 

19세기의 조선의 정치적 상황은 어땟나요?

 

세도정치로 소수가문에 의해 모든 것들이 좌지우지되고 있던 모습,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삼정의 문란이 일어나는 모습 기억나시죠?

 

물론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기 위해 삼정이정청도 설치하고, 암행어사도 파견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안핵사이자 삼정이정청과 관련된 박규수, 개항기 파트에 자주 나올겁니다.

 

 

이렇게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이 심해지는 상황속에서 흥선대원군이 등장한겁니다.

 

흥선대원군의 목표는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이었습니다. 세도정치 때문에 당연히 왕권이 축소되어있겠죠? 

 

또 삼정의 문란에 민생이 도탄에 빠졌으니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한겁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을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흥선대원군,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봅시다

 

 

 

 

 

1. 흥선대원군의 대내정책

 

세도정치에서 소수 가문이 어떤 기관을 장악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시나요?

 

비변사죠.

 

흥선대원군은 이 비변사를 바로 없애버립니다. 왕권을 강화시키려면 당연한 얘기죠?

 

행정도 비변사, 군사도 비변사, 외교도 비변사.. 권력이 너무 한 곳에 집중되어있으니 문제가 발생하는겁니다.

 

이를 깨달은 흥선대원군은 비변사 폐지와 함께 권력을 분산시킵니다.

 

비변사 이전의 강력한 행정 기구, 의정부에 행정의 권한을 넘기고 군사는 삼군부에 넘기죠.

 

 

그리고 개혁이라함은 곧 법입니다. 법을 만지는거죠.

 

이미 앞에서 개혁왕들에 대해 배웠죠? 

 

고구려 소수림왕의 개혁 = 율령

 

조선 시대 세조의 개혁 – 경국대전 (성종 완성)

 

영조의 개혁 – 속대전

 

정조의 개혁 – 대전통편

 

모두 다 법을 만지고 있는 모습.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도 대전회통을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각 부서들, 중요한 시행법들을 제정한 <육전조례>도 만듭니다.

 

 

비변사 없애고 법전도 만들고 했으면 이제 남은건 눈으로 보여주는겁니다. 왕권을요.

 

조선의 정궁 경복궁이 임진왜란때 불타버렸는데, 이를 냅두면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울수 없다하여 경복궁을 중건합니다.

 

그러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바로 돈이죠. 그리하여 끌어모은 돈이 원납전이고, 이 원납전으로도 부족하여 새로 당백전을 찍어냅니다.

 

일당백할 때 당백맞습니다. 당시의 화폐보다 100배의 가치를 가진 엽전인거죠.

 

경복궁 중건 - 당백전 발

 

 

근데 500만원 짜리 지폐를 발행한다고 생각해봅시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 가치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겠죠?

 

또 경복궁을 지을 때 필요한 나무를 보충하기 위해 양반들의 묘지림을 베어다 쓰기도 했습니다.

 

경복궁 중건 - 묘지림

 

양반들은 원납전이라고 기부금도 내는데, 자신들의 효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묘지의 나무도 베어다 쓰니까 흥선대원군이 싫습니다.

 

 

이제 지방의 모습도 봅시다. 흥선대원군은 서원을 아주 과감히 정리합니다.

 

수 천개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싹 없애버리죠. 만동묘도 폐지합니다. 만동묘는 명나라 황제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당장 중국에서도 청나라가 들어서고 명의 황제를 모시지 않는 모습인데, 조선은 아직까지 그러고 있었단거죠.

 

소중화의 의식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조선은 작은 중국이다)

 

 

근데 명과 후금에 대해 중립외교를 펼쳐서 인조반정이 일어난 연산군 기억나시죠?

 

의리와 명분을 챙기지 않아 인조반정이 일어난 것처럼 만동묘를 폐지한 광해군도 여론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건 조금 이따 자세히보죠.

 

 

아무튼 이런 식으로 해서 중앙과 지방에 대한 권력을 정리하면서 왕권을 강화시키는 모습. 이제 민생안정 정책봅시다.

 

삼정의 문란과 가지고 있는 토지를 신고안하는 양반들때문에 민생이 박살난다며 양전사업을 도입합니다.

 

 

양전사업은 토지 조사인데, 이미 여러번 나왔죠? 태종, 광해군, 흥선대원군, 다음엔 또 고종이 할겁니다.

 

양전 사업을 통해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 호포제를 실시합니다. 군정과 관련된 제도인데 시험에 꽤 자주 나오는 녀석입니다.

 

군정은 군대를 가는 대신 포를 내는거죠? 근데 양반은 열외라고 배웠습니다. 양반과 천민은 예비군만 가죠.

 

게다가 영조가 실시했던 균역법, 1년에 1필로 줄이고 결작, 선무군관포, 어,염,선세로 보충하는 균역법을 시행한 뒤에도

 

그 1필조차 양반은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시행한 호포제는 열외가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포를 다 내라는겁니다. 양반도 물론 포함이죠.

 

근데 조선 후기에는 양반이 정말 많다고 했죠? 그들이 포를 내니 상민들의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만동묘 폐지, 서원 정리에 이어 호포제까지 실시하니 양반들이 가만히 있지 않죠. 대내 개혁만 끝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환곡, 환곡의 문제점은 공무원이 자꾸 개입을 한다는거였습니다.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해서 돈을 버는거죠. 심지어는 빌릴 필요도 없는 사람에게 할당을 강제로 주고 뜯어가는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합니다. 그 마을(사회)에서 창고를 알아서 운영해라 이겁니다.

 

민간인을 뽑아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했죠.

 

 

민생안정에 대해 다시 정리하자면 양반도 군포내, 공무원 개입하지마, 토지 신고해서 투명하게 해. 이겁니다.

 

경제면에서의 개혁은 정말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만 했죠. 그만큼 전반적으로 부정과 부패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입니다.

 

 

 

당연히 이 개혁의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인 양반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야금야금 권리를 빼앗기던 양반들의 총대를 메고 최익현이 등장합니다.

 

이 최익현이 탄핵 상소를 올립니다. 사실 지금 왕은 흥선대원군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입니다. 근데 고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르니,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 판단하여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한거죠.

 

그러다 최익현의 탄핵 상소가 올라온 것이 고종이 22살이 되던 해입니다. 10년 동안 정치한거죠 흥선대원군이?

 

탄핵 상소를 올리는 것은 고종에게 직접 통치를 하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게 받아들여져 흥선대원군은 실세에서 내려오죠.

 

 

이 최익현이라고 하는 인물은 앞으로 역사에 또 등장할테니 기억해두시면 좋습니다.

 

개항 반대의 대표적 세력으로 등장하거든요. 또 우리의 외교권을 강탈했던 을사늑약에서도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아무튼 이 최익현의 탄핵 상소를 받은 흥선대원군도 고민을 합니다. 딴 사람도 아니고 아들이니까, 믿고 내려오는걸 선택하죠.

 

최익현의 탄핵 상소 이후에 고종의 친정이 이루어지는걸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흥선대원군의 대내정책입니다.

 

그런데 이때 조선의 안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대외정책도 봅시다

 

 

 

 

 

2. 흥선대원군의 대외정책

 

 

19세기, 이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서구열강들이 동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시기였습니다.

 

서세동점이라고도 하죠. 중국도 영국에 강제 개항 당하는 마당에 당연히 우리나라도 서양의 영향을 받습니다.

 

바다에 배의 모양이 보던것과 다른 이양선들이 정말 많이 출현하는겁니다.

 

듣도 보도 못한 배가 보이고 또 그 안에 머리도 노랗고, 코도 이따만한 사람들이 있는거죠. 이양선이 왜 조선까지 왓을까요?

 

 

목적은 하나, 통상수교입니다. 자국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물건들을 팔 수 있는 판매처가 필요했던 것이죠.

 

흥선대원군은 이런 통상수교에 대해서 거부정책을 선택합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은 천주교를 탄압한 병인박해에서도 드러납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도 유배갔던거 기억나시죠? 그 대단한 정약용이 유배 가는 상황인데, 프랑스 선교사들은 얄짤없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병인박해때 죽임당하죠. 오호, 외교적인 문제가 좀 커지겠는데요?

 

 

 

조선은 선교사들을 죽이고나서야 이거 큰일인데? 합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제네럴셔먼호 사건이 터지죠. 평양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착해서 외국 배가 들어오면 먹을 것도 주고 물도 주고 잘해줍니다.

 

미군들은 그런 대접을 받고 밤에 잠이나 잘것이지 몰래 내려와서 민간을 덮칩니다.

 

그래서 이 제네럴셔먼호를 불태워버럽니다.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평양 감사 박규수죠.

 

삼정의 문란 해결을 위해 안핵사로 파견되고, 삼정이정청 설치를 건의한 그 박규수 맞습니다.

 

근데 또 다 부수고나서야 고민합니다. 이거 큰일인데? 하면서 ..

 

 

이렇게 서울에서는 병인박해, 평양에선 제네럴 셔먼호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와중

 

드디어 프랑스가 쳐들어옵니다. 당시 서구열강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개함이 깔려있었습니다.

 

 프랑스는 감히 미개한 나라가 프랑스인을 죽였다며 쳐들어오죠. 바로 병인양요입니다.

 

 

강화도로 쳐들어온 프랑스는 조선과 위력이 하늘과 땅 차이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쏘고 있는 포는 운동에너지에 의해 날아간 쇳덩어리가 상대의 배에 구멍을 뚫어 가라앉도록 하는 무기였죠.

 

근데 프랑스는 살상용이었습니다. 우리의 포와 달리 펑펑 터지는 캐시 아이템이었죠.

 

 

오직 인원의 차이를 이용해 꾸역꾸역 죽으며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강화도를 지켰던 인물이 양헌수입니다. 시험에 아주 잘나오는 분입니다. 정족산성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죠.

 

강화도는 양헌수의 정족산성이라면, 김포에는 문수산성에서 활약한 한성근이 있습니다.

 

 

양헌수 맛을 본 프랑스는 결국 도망갑니다. 근데 이것들이 그냥 도망가지 않고 약탈을 하며 도망가죠.

 

정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창덕궁에 설치해둔 규장각 기억나시나요? 외규장각을 약탈해갑니다.

 

이렇게 프랑스를 막아내면서 외규장각을 털렸는데, 바로 2년 뒤 독일인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는 대박 사건이 일어납니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 고종의 할아버지입니다.

 

이 남연군 묘를 도굴해 시신을 탈취한 뒤, 그 시신으로 통상수교 협상을 하려하는거죠.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흥선대원군은 바깥 놈들은 상종하면 안되겠구나 싶어서 더욱더 강하게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평양에서 박규수가 침몰시켜 모두 죽여버린 제네럴셔먼호 사건, 이게 드디어 미국 귀에 들어갑니다.

 

복수를 위해서 또 배를 보내죠. 그게 바로 신미양요입니다. 신미양요도 마찬가지로 강화도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활약했던 인물은 어재연입니다. 광성보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장군이죠.

 

조선의 무기는 열강들에 비해 매우 열악해서 싸움이 성립불가였습니다.

 

 

참고로 자꾸 공격당하는 강화도는 옛날만 해도 한국의 최후의 보루와 같은 지역이었습니다.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고려 정부가 천도하고, 후금이 쳐들어 왔을땐 조선 정부가 강화도로 도망갈 정도로 안전했으니 말다했죠.

 

하지만 근대사로 들어오면서 이 강화도는 마지막 보루가 아닌 최전선이 됩니다. 죄다 배를 타고 오니까요.

 

 

어쨌든 이 미국도 철수하면서 장수 깃발, 수자기를 약탈해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프랑스도 물리쳐내고, 미국도 물리쳐낸 당시의 우리 선조들은, 서양 제국주의 세력과는 상종을 못하겠다 하는겁니다.

 

시신 탈취를 하질 않나 문화재를 탈취하질 않나, 이렇게 해서 신미양요 이후에 광해군은 전국 각지에 모두 척화비를 세웁니다.

 

척화비

 

서양 세력들과 손잡자 하는 것은 매국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죠.

 

 

1866년부터 1876년 동안의 10년이 고종을 대신한 흥선대원군의 치세인데,

 

이동안에 있었던 일이 병인박해 제네럴셔먼호 병인양요 남연군묘 도굴 신미양요..... 참 많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이런 대외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겠죠?

 

 

대원군은 이 대외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왕권 강화, 민생 안정도 시킨 겁니다.

 

흥선대원군의 원맨쇼

 

나름대로 정말 조선의 마지막 불꽃 역할을 했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 불꽃이 옛날 왕권 전제군주체제를 향한 것이 한계였죠.

 

아무튼 이렇게 대원군이 혼란한 조선후기 19세기를 정리하나 싶더니 일본이 등장합니다.

 

제국주의 행세를 하고 있는 일본. 이 일본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다음 글에서 확인해보죠.

 

이번 글은 분량이 적죠? 조절을 실패한듯 합니다.. 

 

 

 

대내정책

19C
세도정치
삼정의 문란
왕권강화 비변사 폐지
권력 분리 : 의정부 - 행정, 삼군부 - 군사
경복군 중건 : 원납전, 당백전, 묘지림
서원 철폐 (47개 남김)
만동묘 폐
<대전회통> <육전조례
최익현의 탄핵 상소
-고종 친정 시작
민생안정 양전사업, 호포제(양반 징수), 사창제(민간) 실시

 

 

대외상황

19C 흥선대원군 1866 1866 1866 1868 1871
서세동점
이양선 출몰
통상수교거부 병인박해

프랑스 선교사 숙청
제네럴셔먼호

평양 감사 박규수
병인양요

양헌수 정족산성
한성근 문수산성
외규장각 약탈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 신미양요

어재연 광성보전투
수자기 약탈

 

'단붕이와 함께하는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갑신정변 ~ 대한제국 설립  (0) 2023.07.22
개항기 - 갑신정변  (0) 2023.07.22
조선 후기 [경제,사회]  (0) 2023.07.18
조선 후기 [조직,외교]  (0) 2023.07.17
조선 후기 [정치]  (0) 2023.07.16